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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싱 왜 10번 갔냐고요? 갈 때마다 하나씩 더 보이죠”

등록 2016-10-26 19:12수정 2016-10-26 20:45

[짬] 중국인문기행 이끄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지난해부터 다산연구소 주관으로 ‘중국 인문기행’을 이끌고 있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부터 다산연구소 주관으로 ‘중국 인문기행’을 이끌고 있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989년 이후 중국 여행을 100번은 했을 겁니다. 사오싱(소흥)은 10번 이상 간 것 같아요.”

다산 시의 권위자인 한문학자 송재소(73)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다음달 4일 올해 들어 세번째 중국 여행길에 오른다. 다산연구소가 주관하는 ‘송재소 교수와 함께하는 중국인문기행’을 이끌기 위해서다. 지난해 가을 시작해 이번이 세번째인 이 인문기행은 지난해 그가 펴낸 책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인문기행>(창비)이 계기가 됐다. 숱한 중국 여행의 내공에 중국 시와 술,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보태진 이 여행서는 지금까지 2천부씩 3판까지 찍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는 내년 초 2편을 내놓을 계획이다. 중국 기행기를 죽기 전까지 계속 펴내겠다는 송 교수를 지난 19일 서울 서교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같은 곳을 10번 이상 갈 이유가 있을까? “중국은 수천 년 역사가 집적돼 볼 곳이 많아요. 한 곳을 가더라도 제대로 보려면 열흘은 필요합니다. 갈 때마다 하나씩 더 봅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에 월왕 구천이 건설한 월국 도읍지 사오싱을 예로 들었다. “역사가 깊은데다 중국 근대 시인 루쉰의 사적과 송나라 시인 육유의 로맨스로 유명한 정원(심원)도 있어요. 술도 좋아요.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죠.” 그는 세번째로 황산을 찾았을 때 800미터 서해대협곡 장관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엔 황산에 모노레일이 생겼어요.”

인문기행 참석자는 평균 30명이다. 애초 1년에 한번만 하려 했으나 호응이 좋아 두차례로 늘렸다. 그는 성균관대 교수모임(행산회, 행연회)과 제자들 모임과도 주기적으로 중국을 찾는다. “재작년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동호인 모임의 (중국 인문기행 안내) 부탁을 받고 동행했죠. 내가 즐거우니 시간이 허락하면 같이 갑니다.” 그도 가보지 못한 중국 땅이 있다. “티벳을 못 갔어요. 예전에 페루 티티카카호 고산 여행 때 머리가 깨질 듯 아파 고생했어요. (고산병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도 못 갈 것 같아요.”

89년 이후 중국여행 100여차례
“수천년 역사 쌓여 볼 곳 많아”
작년 낸 중국기행기 3판 찍어
기행기 2탄은 내년초 내기로

다산시 번역 등 다산문학 권위자
“유신때 다산 사회비판시에 끌려”

그는 일년에 360일은 술을 마시는 애주가로 유명하다. “젊었을 땐 매일 소주 5~6병, 고량주는 끝도 없이 먹었죠. 이제는 (바깥 약속이 없을 때) 집에서 소주 1병이나 위스키 네잔 정도 마십니다.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려면 자제해야겠지요.” 2008년 퇴임 때 송 교수의 제자들은 논문집 대신 <우리 선생님>이란 이름의 기념문집을 꾸몄다. 80명이 넘는 제자들의 글엔 술로 얽힌 스승과의 정겨운 추억이 담겼다. 퇴임 특강 주제도 ‘중국 술의 세계’였다. 여기서 송 교수는 ‘나의 유일한 소원은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을 때 나의 생을 마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서울대 영문학과 62학번인 송 교수는 대학원 진학을 학부 졸업 10년 만인 1976년에 했다. “대학 졸업 뒤 10년 동안 방황했죠. 서울에서 내가 영문학에 어떤 오리지널한(독창적)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어요. 이 기간에 당시로는 매우 고급스런 학술지인 <문화비평>을 창간해 5호까지 직접 만들었어요.” 사학과 대학원을 가려 했으나 당시 영문과 졸업생에겐 입학 자격을 주지 않았다. 국문학과로 방향을 정한 뒤 73년부터 우전 신호열(1914~1993) 선생의 집을 찾아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낮엔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밤엔 한자 학습에 몰두한 것이다. “93년 신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20년 동안 배웠어요.” 송 교수의 증조부는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공산 송준필(1869~1943) 선생이다. 공산은 일제 때인 1919년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다산 문학의 개척자로 불린다. 박사학위 주제가 다산 시 연구이며, 다산 문학 연구와 다산 시 번역 등의 업적으로 다산학술상(2002)과 벽사학술상(2015)을 받았다. “대학원에서 벽사 이우성의 글(실학의 사회관과 한문학)을 읽고 다산 시에 흥미가 있다는 걸 알았죠. 다산은 2500수의 시를 쓴 위대한 시인입니다. 유신 시절에 다산의 강렬한 사회 비판 시를 읽고 대리만족을 느꼈어요. 속이 시원했죠.” 그는 다산 시의 위대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맹자 이래 유자들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외쳤지만, 시를 쓸 때는 음풍농월 류가 많았어요. 다산 시는 그의 실학사상과 표리관계였어요. 다산 시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던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임상보고서라면 다산 산문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은 처방전이죠. 사상이 출중해도 문학적 형상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다산은 둘을 겸비했어요.”

그는 중국 기행 책에서 “젊은 시절엔 두보의 애민·사회시를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백의 호방한 낭만적 기질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적었다. “두보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전보다) 이백에게 더 끌립니다. 독재가 사라진데다 나이 들면서 격한 성격이 누그러진 까닭도 있겠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백 시는 ‘독좌경정산’(경정산에 홀로 앉다), ‘월하독작’(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이다. “이백의 시에선 인간계와 천상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어요. 이는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기도 하지요.” 술을 마시면서 달과 노는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환멸이 있다는 것이다. “도연명의 유토피아 사상도 현실에 대한 저항에서 나왔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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