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중국인문기행 이끄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지난해부터 다산연구소 주관으로 ‘중국 인문기행’을 이끌고 있는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수천년 역사 쌓여 볼 곳 많아”
작년 낸 중국기행기 3판 찍어
기행기 2탄은 내년초 내기로 다산시 번역 등 다산문학 권위자
“유신때 다산 사회비판시에 끌려” 그는 일년에 360일은 술을 마시는 애주가로 유명하다. “젊었을 땐 매일 소주 5~6병, 고량주는 끝도 없이 먹었죠. 이제는 (바깥 약속이 없을 때) 집에서 소주 1병이나 위스키 네잔 정도 마십니다.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려면 자제해야겠지요.” 2008년 퇴임 때 송 교수의 제자들은 논문집 대신 <우리 선생님>이란 이름의 기념문집을 꾸몄다. 80명이 넘는 제자들의 글엔 술로 얽힌 스승과의 정겨운 추억이 담겼다. 퇴임 특강 주제도 ‘중국 술의 세계’였다. 여기서 송 교수는 ‘나의 유일한 소원은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을 때 나의 생을 마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서울대 영문학과 62학번인 송 교수는 대학원 진학을 학부 졸업 10년 만인 1976년에 했다. “대학 졸업 뒤 10년 동안 방황했죠. 서울에서 내가 영문학에 어떤 오리지널한(독창적)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어요. 이 기간에 당시로는 매우 고급스런 학술지인 <문화비평>을 창간해 5호까지 직접 만들었어요.” 사학과 대학원을 가려 했으나 당시 영문과 졸업생에겐 입학 자격을 주지 않았다. 국문학과로 방향을 정한 뒤 73년부터 우전 신호열(1914~1993) 선생의 집을 찾아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낮엔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밤엔 한자 학습에 몰두한 것이다. “93년 신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20년 동안 배웠어요.” 송 교수의 증조부는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공산 송준필(1869~1943) 선생이다. 공산은 일제 때인 1919년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다산 문학의 개척자로 불린다. 박사학위 주제가 다산 시 연구이며, 다산 문학 연구와 다산 시 번역 등의 업적으로 다산학술상(2002)과 벽사학술상(2015)을 받았다. “대학원에서 벽사 이우성의 글(실학의 사회관과 한문학)을 읽고 다산 시에 흥미가 있다는 걸 알았죠. 다산은 2500수의 시를 쓴 위대한 시인입니다. 유신 시절에 다산의 강렬한 사회 비판 시를 읽고 대리만족을 느꼈어요. 속이 시원했죠.” 그는 다산 시의 위대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맹자 이래 유자들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외쳤지만, 시를 쓸 때는 음풍농월 류가 많았어요. 다산 시는 그의 실학사상과 표리관계였어요. 다산 시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던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임상보고서라면 다산 산문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은 처방전이죠. 사상이 출중해도 문학적 형상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다산은 둘을 겸비했어요.” 그는 중국 기행 책에서 “젊은 시절엔 두보의 애민·사회시를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백의 호방한 낭만적 기질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적었다. “두보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전보다) 이백에게 더 끌립니다. 독재가 사라진데다 나이 들면서 격한 성격이 누그러진 까닭도 있겠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백 시는 ‘독좌경정산’(경정산에 홀로 앉다), ‘월하독작’(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이다. “이백의 시에선 인간계와 천상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어요. 이는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기도 하지요.” 술을 마시면서 달과 노는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환멸이 있다는 것이다. “도연명의 유토피아 사상도 현실에 대한 저항에서 나왔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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