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뿔뿔이 흩어진 신안선 유물들을 한데 모아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83년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조사원들이 신안선 용골을 인양하는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1970년대말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도자기들을 살펴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부녀. 설명하는 이는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있는 신안선 복원 전시실. 길이 30m를 넘는 거대한 신안선의 전모를 볼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난 7~9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은 1977~84년 2만점이 넘게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14세기 원나라 침몰선의 도자기, 공예품들을 한꺼번에 꺼내 보여준 전례없는 대형 전시였다. 하지만 전시에는 꼭 들어가야 할 것이 하나 빠져 있었다. 바로 도자기들을 실은 거대한 배였다.
77~84년 발굴 당시 도자기 등 2만4000여점의 막대한 선적품이 뭍에 나왔지만, 그에 못지않게 관심을 모은 것이 길이 34m에 폭이 11m나 되는 선체였다. 용골과 외판 등을 이은 선체는 30년간 보존처리, 복원을 거쳐 2004년부터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중이다. 선적 유물들은 즉시 국립박물관으로 귀속됐으나, 선체와 안에 실은 1000여개의 동남아산 자단목 부재들은 문화재청 산하 연구소로 넘어가 관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발굴과 동시에 이산가족이 된 셈이다. 실제로 박물관 전시는 배의 발굴과 인양 작업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담지 않았다. 발굴에 참여한 원로 전문가들은 느껍게 전시를 살펴보면서도 아쉬운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요즘 문화재계에서는 곡절 많은 신안선 유물의 미래를 놓고 쑥덕공론이 벌어지는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이어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신안선 등 주요 해저유물 발굴 인양 과정의 전모를 살펴보는 전시를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 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한 ‘대한민국 수중고고학 40년’ 특별전이다. 원래 신안선 중심 전시를 생각했으나 박물관이 석달 만에 신안선 소장 유물들을 ‘창고 대방출’ 하듯 끄집어낸 기획전을 차리자 2000년대 나온 태안 마도선, 영흥도선까지 포함해 국내 수중고고학의 성과를 집약하는 쪽으로 바꿨다. 연구소와 박물관이 소장품 관할 문제 탓에 별도로 어색한 기념전시를 꾸리자 이제라도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지난 26~27일 마련한 신안선 발굴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분산된 유물들을 배가 있는 목포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강봉룡 목포대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연구소 출발이 신안선 발굴에서 비롯됐고 서해, 남해에서 발굴한 유물들의 보존처리, 전시가 핵심 업무인데도 신안선 유물의 관리체계가 연구소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등으로 분산돼 연구, 전시의 시너지 효과가 현저히 제한되는 상황”이라며 “유물 관리를 연구소 쪽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윤용혁 공주대 교수와 김용한 전 연구소 학예실장도 “유물 관리는 한데 모으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연구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목포와 신안의 여론도 움직이고 있다. 국립박물관의 전시 뒤로 현지 언론과 주민들 사이에서 유물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안군은 배가 발굴된 해역 근처에 전시시설을 건립하겠다는 방침 아래 지난달 연구소와 정보교류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국립중앙박물관 쪽은 고민에 빠졌다. 신안선 유물들은 77년부터 박물관에 ‘신안품’으로 귀속돼 관할을 바꿔 돌려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물 연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역량을 집중할 만한 형편도 못 된다는 게 걸린다. 유물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산 도자기들은 전문연구자가 없어 40여년간 보고서를 못 내고 있고, 최근 들어 도자기를 제외한 금속공예품 보고서 작업이 첫발을 뗐다. 박물관 쪽은 용천요, 경덕진요 등의 중국 도자 유물들의 보고서를 완간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 20권에 가까운 분량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목포 연구소 쪽은 신안선 유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윤형원 전시과장은 “복원된 신안선을 중심으로 2억원대의 애니메이션까지 갖춘 체험 전시실이 있고, 내년 태안에 서해 분소가 완공되면 상당수 수장품이 옮겨가 전체 유물들을 받아들여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연구소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간 신안선 특별전을 내년 3월 유치하고, 이를 계기로 수백점에 불과한 신안선 소장품을 크게 늘리는 계획을 구상중이다. 78년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신안선 전용관으로 지어졌던 국립광주박물관도 최근 유물 확보에 관심을 보여 기관들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질 조짐도 보인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관 이기주의를 벗어나 서로 공생할 대안을 찾겠다”고 밝혀 신안선 유물의 미래를 놓고 어떤 해법이 나올지 눈길이 쏠린다.
목포/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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