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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진흙탕 공방인가…더 꼬이는 ‘천경자 미인도’ 논란

등록 2016-11-08 17:12수정 2017-02-27 19:24

프랑스 감정단 ‘위작’ 결론…국립현대미술관은 반박
유족이 전액 부담한 감정 비용, 미술관쪽 대응 등 지적
미인도 본 국내 전문가들 “진위 아리송하다” 반응
20여년째 천경자 화백의 진위작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여년째 천경자 화백의 진위작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여년째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인지를 놓고 입씨름이 거듭되어온 ‘미인도’(목록에 1977년작으로 표기·국립현대미술관 소장)가 최근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6월 유족 쪽이 “진작설을 유포했다”며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최근 외국 감정팀의 위작 분석 결과를 놓고 미술관과 유족이 첨예한 ‘감정 대결’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검찰 의뢰로 ‘미인도’를 분석해온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는 지난달 26일 그림을 확실한 위작으로 판정한 최종 보고서를 검찰과 유족에게 건넸다. 감정팀은 보고서에서 특수 카메라로 ‘미인도’와 비슷한 시기 천 화백의 진품 9점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진품 확률은 0.0002%’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미인도 화면 층위를 1600여개 단층으로 쪼개어 각각 촬영하고 다른 진품들과 비교해 데이터 수치를 매겨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게 골자다.

미술관 쪽은 4일 곧장 보도자료를 내어 ‘침소봉대한 것에 불과하다’는 반박 입장을 냈다. 감정팀이 감정에 필수적인 천경자 작품의 배경지식, 미술사 자료·재료·소장경위 분석 등을 배제하고 화면 표층 분석만으로 위작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특히 미술관이 ‘미인도’를 입수한 시점인 1980년 이후 그려진 81년작 ‘장미와 여인’을 보고 위작을 그렸다는 결론을 내려 신빙성을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반박했다. 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유족 쪽이 보고서 결론을 내세운 여론몰이로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우리도 공식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천경자 화백이 1981년 그린 진작 ‘장미와 여인’. 둘째딸 김정희씨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감정팀은 ‘미인도’의 제작 시기를 80년대까지 확대할 경우 이 작품을 본떠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천경자 화백이 1981년 그린 진작 ‘장미와 여인’. 둘째딸 김정희씨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감정팀은 ‘미인도’의 제작 시기를 80년대까지 확대할 경우 이 작품을 본떠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유족 쪽과 변호인단은 발끈했다. 배금자 변호사는 “프랑스 감정팀의 보고서는 ‘미인도’ 자체에 대해 유례없이 방대한 규모의 과학적 분석을 진행한 결과인데도, 내용을 미술관 쪽이 왜곡해 해석했다”고 비난했다. 보고서 말미에 ‘미인도’의 제작연대를 80년대까지 넓혀 볼 경우 81년작 ‘장미와 여인’을 베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넣은 것인데, 미술관 쪽의 반박자료는 이런 전체 맥락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유족 쪽은 고소장에서 80년 미술관에 들어온 원래의 ‘미인도’는 분실됐으며, 1990년 ‘움직이는 미술관’ 전의 복제 포스터 전시품으로 해당 그림이 확정되자 미술관 인사들이 공모해 위작인 현재 소장품으로 바꿔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세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압류한 그림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집에서 나온 증거가 전무하고, 미술관 입수 당시의 작품 이미지도 없다는게 변호인단 쪽의 입장이다.

유족 쪽 변호인들은 여기에 덧붙여 검찰이 보고서를 피고소인인 미술관 쪽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의 공정성까지 문제삼고 있다. 반면 미술관 쪽은 ‘검찰이 보고서 내용 일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내용을 알게 된 것이라고 다시 반박하는 등 논란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검찰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반박자료를 내며 공방을 과열시킨 미술관 쪽 행태도 국가기관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미인도’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행보는 미술판에서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외국 감정전문가를 추천받는 과정에서 유족이 제안한 뤼미에르 감정팀만을 선택했고, 7000만원을 넘는 감정비용도 유족 쪽에 전액부담시켜 공정성 시비를 자초했다. 검찰은 국내 미술계 전문가 10여명을 지난달과 이달초 경매사 서울옥션 평창동 본사와 강남 전시장으로 불러 ‘미인도’와 다른 진작그림을 걸어놓고 서너시간 살펴보게 한 뒤 진위에 대한 의견서를 받기도 했다. 화랑가에는 감정팀 분석과 상반된 의견들이 나왔다는 설이 퍼지고 있다. 실제로 검찰 감정에 참여한 한 미술계 인사는 “처음 ‘미인도’를 살펴보니 채색 선묘 등이 무난한 그림이었다. 진위 판정을 내리기가 정말 난감했다”고 전했다. 국내 감정가 의견과 프랑스 감정팀의 결론이 확연하게 엇갈릴 경우 수사는 진퇴양난에 빠질 공산이 크다. 검찰은 지난 6월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회고전 출품작들을 단 하루 압수해 감정 참고 자료로 썼다가 돌려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미인도’ 디엔에이(DNA) 분석을 의뢰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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