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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국 대중문화사 시발점 ‘동학’부터 잡은 이유는?”

등록 2016-11-14 18:36수정 2016-11-14 21:43

[짬]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대중음악평론가 강헌(54)씨가 최근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이봄 펴냄) 1권과 2권을 펴냈다. 1894년부터 최근까지 120년간의 한국 대중문화사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피는 4권짜리 기획이다. 유신시절까지를 우선 펴냈고, 나머지 두 권은 내년 4월께 나올 예정이다. 그를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만났다.

1894년부터 120년 흐름 4권 기획
‘한국대중문화사’ 1·2권 최근 출간
“억압 맞선 최전선이 대중문화다”
“매체는 죽고 ‘네이버’ 모든것 통제”

12년전 죽을 고비 ‘명리학’ 몰두해
저서 5만권 팔려…4년째 강의 ‘인기’

그는 1990년대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평론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정작 자신의 책을 펴낸 것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음악사의 중요한 네 장면을 다룬 첫 저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냈고, 이어 명리학을 다룬 <명리-운명을 읽다>를 펴냈다. 첫 책은 1만권, 두번째 책은 5만권이 팔렸다.

그는 2년 전부터 서울 동작구의 39층 아파트에서 산다. 높은 곳에서 사는 것도 명리학과 관련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높은 곳으로 이사한 뒤 저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가 된 것이다. 다음달엔 명리학 저술 2탄이 나온다.

그는 2013년부터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명리학 강의를 했다. “1기 때 10명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80명이 왔어요. 그동안 4기까지 300여명이 제 강의를 들었죠.” 수강료는 주 1회(3시간) 10주 강의에 30만원이다. 명리학이 ‘무직’인 그를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생년월일시’ 사주를 봐주는 상담은 일주일에 1~2명 정도 해준다. “(벙커1에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임상을 계속 해야 합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42살에 혈관이 70㎝ 이상 찢어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의사는 곧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재수 시절 그의 운명을 족집게처럼 점쳤던 역술인을 떠올렸다. ‘결혼을 세번 하고 42살 때 인생의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당시 42살의 강헌은 두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바로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좌파비평가’가 사주팔자를 얘기하는 게 낯설어 보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전히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생각해요. 내 돈 주고 사주 보러 간 적도 없어요. 하지만 21세기 과학적 합리주의 시대에도 명리학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어요. 2천년대 들어 2조원대이던 시장 규모가 지금은 6~9조원대입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답은 찾았을까? 그는 기록적 경제성장에도 행복 체감도는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명리학엔 허세가 없어요. 얼마나 돈을 벌지, 결혼은 할 수 있는지와 같은 인간의 가장 속물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인간의 근원적 의문에 답을 주는 게 철학이라고 하지만, 고상한 철학자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근원적 질문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게 명리학이다.

대중문화를 향한 그의 애호도 명리학을 보는 이런 태도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역사의 주체이면서 여전히 피지배계급인 대중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거대한 투쟁의 최전선이 바로 대중문화입니다.” 트럭 운전수 출신인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예로 들었다. “엘비스는 우아한 백인문화를 무시하며 격렬히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했죠. 그 시절 목사나 교사가 제안한 길과 다른 길을 갔어요. (그 영향으로) 청교도적 지배질서가 무너졌죠. 또 다양한 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도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는 지난 120년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적 성격으로 ‘사대성과 독자성의 대치’를 들었다. <애수의 소야곡>(박시춘 작, 1938)을 보자. 일본 엔카를 부분 표절했지만 선율에 녹인 풍부한 표정과 드라마로 일본 노래를 뛰어넘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74년 나온 ‘신중현과 엽전들’의 데뷔 음반을 두고는 “일본 제국주의와 미 대중문화에 지배된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종속성의 굴레를 우리의 전통적 해학과 비장의 미학으로 일거에 끊어버렸다”고 했다.

왜 한국 대중문화사의 출발이 동학이었을까? “대중이란 개념의 출현을 말하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봉건적 지배질서를 극복하는 새로운 세계관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동일한 문화의 전국적 공유입니다. 동학이 여기에 부합합니다. 동학 때 ‘칼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노래가 전국으로 퍼졌어요.”

그는 “20세기가 끌날 때까지 한국 문화가 자율적이었던 적은 단 1초도 없었다”고 했다. “일본 총독이나 이승만, 박정희는 문화의 힘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통제, 규제하려 했죠. 그게 우리 대중문화의 불운입니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은 국민가요 작곡 의뢰를 거절한 신중현을 대마초 사범으로 몰아 음악 활동을 금지시켰다. 신중현은 5년 뒤 복권됐지만, 이미 천재적 음악성이 빛을 바랜 뒤였다.

그는 우리 대중문화의 황금기로 1980년대를 꼽았다. “3저호황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대중문화의 산업적 인프라가 갖춰집니다. 80년대부터 돈을 벌지 않는 10대까지 모든 세대가 문화적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죠. 동시에 대항적 대중문화도 자기 기반을 가지고 크게 성장합니다. 주류와 비주류가 2인 삼각을 이룹니다.” 이런 2인삼각 구도는 90년대 들어 자본의 득세로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 별점이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현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비평을 하면서 먹고 살았어요.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글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다 죽었어요. 네이버가 모든 걸 통제합니다. 네이버를 파괴시켜야 합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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