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에서 세조(수양대군)를 연기한 이정재(왼쪽)와 이번에 발견된 세조 어진 초본. 쇼박스·서울옥션블루 제공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1417~1468)는 수양대군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1455년 12살에 왕이 된 어린 조카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사육신을 비롯해 수많은 신하를 죽인 ‘피의 군주’라는 평가와, 조선 통치의 기본법인 <경국대전>과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 역사를 정리한 <동국통감> 등의 편찬을 시작하며 현직 공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해 국가수입을 늘리는 등 세종을 계승한 ‘치적 군주’란 평가가 엇갈린다. 2013년 9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관상>에서 배우 이정재가 ‘역란’의 관상, 무자비하고 끈질긴 ‘이리’ 상으로 그려지는 수양대군을 연기했다. 진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 제7대 왕 세조 어진(임금의 초상화) 초본(밑그림)이 공개됐다. 온라인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블루가 지난 22일 진행한 경매에 나온,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1892~1979)가 1928년에 그린 가로 131.5㎝, 세로 186㎝ 크기의 그림이다. 서울옥션블루 쪽은 “김은호가 영조 때 그려진 세조 어진을 이모(移模·원본을 똑같이 베껴 그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어진은 조선 제1대 왕 태조와 영조(21대), 철종(25대), 고종(26대), 순종(27대)까지 다섯 점뿐이었다.
이당 김은호가 그린 세조 어진 초본(1928). 서울옥션블루 제공
어진은 낡으면 그대로 따라 그린 이모본으로 전해졌다. 태조 어진(국보 317호)도 1872년에 제작된 이모본이다. 나머지는 상상화다. 순조(23대)·문조(순조의 세자, 추존왕) 어진은 남아 있긴 하지만 불에 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이날 세조 어진 초본은 시작가 1000만원에서 7200만원에 낙찰됐다.
김은호가 사망한 뒤 그의 세조 어진 초본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세조 어진 초본은 김은호 생전인 1969년 <경향신문> 5월14일치에 실린 적이 있다. 경향신문은 김은호가 그린 세조 어진 초본에서 보듯 조선 왕들은 수염이 덥수룩하지 않은데, 세종대왕상은 수염이 길고 풍성해 고증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김은호 사후 행방이 묘연했던 세조 어진 초본이 약 50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번에 서울옥션블루에 나온 초본과 경향신문에 실린 초본은 매우 흡사하다. 서울옥션블루 쪽은 “그동안 김은호의 세조 어진 초본을 누가 갖고 있었는지는 고객 정보여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진이 언제부터 제작·보관됐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 들어 어진이 본격적으로 제작됐으며, 당대 최고의 국립 미술집단 ‘도화서’ 화원들이 맡았다. 사진을 찍듯 털끝 하나까지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는 원칙을 따랐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국으로 흩어졌던 어진은 1921년 창덕궁 신선원전으로 모였을 땐 모두 48점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한국전쟁 때 창덕궁에서 부산 용두산 부근으로 옮겨졌다가 1954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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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9년 5월14일치에 세조 어진 초본이 실렸다. 경향신문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