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수제맥주를 만드는 데는 대단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양조통(발효조), 그리고 탄산가스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맥주를 담을 내압 페트병이 필수다. 나머지는 꼭 사지 않고도 변통할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순서대로 무슨 장비가 필요한지 살펴보자. 몰트를 따뜻한 물에 우려내 당을 추출하는 매싱 과정과 추가로 당과 향을 추출하는 스파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맥아추출물을 이용해 손쉽게 만드는 경우를 가정한다.
20리터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 양조통들. 오른쪽 양조통 뚜껑엔 에어록이 꽂혀 있다. 정남구 기자
맥아추출물과 홉 등 재료가 준비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맥즙을 끓이는 일이다. 맥주 19~20리터를 만든다면 우선 큰 냄비에 물 21리터가량 넣고 맥아추출물을 풀어넣는다. 그리고 홉을 넣어 한 시간 이상 끓인다. 홉을 넣을 삼베 주머니가 따로 있으면 좋다. 물은 끓이는 동안 일부 증발한다.
맥즙을 끓이는 큰 냄비가 필요하다. 나는 30리터짜리 스테인리스 냄비를 사서 쓰고 있다. 7만원가량 한다. 맥즙을 끓이는 데도 쓰지만, 그 전 단계인 맥아에서 맥즙을 우려내는 데도 쓸 수 있는, 온도계가 달린 당화조를 산다면 15만원가량 할 것이다. 맥즙을 우려낼 때는 맥아를 담을 광목천 주머니가 있으면 좋다. 맥즙의 비중은 알코올 농도를 좌우한다. 그러므로 비중계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끓인 맥즙은 식혀서 양조통에 넣고 효모를 넣어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플라스틱 양조통을 쓴다. 3만~5만원에 살 수 있다. 대개 에어록(양조통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밖으로 배출하고, 밖에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는 장치)이 딸려 있다.
발효가 끝나면, 내압 페트병에 맥주를 넣는다. 병입할 때 설탕을 약간 넣으면 설탕이 분해되면서 병 안에 탄산가스가 가득 차게 되고, 맥주에 녹아들어간다. 수제맥주용 페트병은 1리터짜리가 400~500원가량 한다. 플립톱 유리병을 쓰면 페트병보다 꽤 비싸다. 맥주를 설탕과 함께 병에 넣어 1~2주 지난 뒤,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켜 마신다. 페트병은 세척제로 잘 씻어서 몇 차례 재활용할 수 있다.
사실 수제맥주를 만들 때 장비보다 더 많은 고민거리가 발효조를 둘 공간이다. 에일 효모를 쓴다면 20도(효모 종류에 따라 다르다) 안팎, 라거 효모라면 10도 안팎의 온도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여름에는 이런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수제맥주를 만들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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