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 해저로 잠수해 고려시대 침몰선(마도 3호선) 내부를 살피던 조사원들은 깜짝 놀랐다. 널린 생선뼈들이 나타났는데, 뼈들 사이에 누런 살이 고스란히 붙어 있었던 것이다. 선체 다른 곳에서는 지금 써도 될 정도로 온전한 나무빗도 나왔다. 앞서 2006년 경기도 안산 대부도 근해에 가라앉은 고려 배(대부도선)에서는 붉은 과육이 남은 곶감들도 발견됐다. 인양된 곶감 덩어리에는 시큼한 과실 향이 남아 있었다. 과거 한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타임 슬립’(time slip)의 경험이었다.
20여년간 서해와 남해의 해저유물 발굴에 땀 흘려온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이 머리 맞대고 함께 쓴 책 <한국의 보물선 타임캡슐을 열다>(공명)에는 땅 파는 육상고고학과는 전혀 다른 수중고고학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국내 수중고고학의 고고성을 울린 전남 신안 원나라 무역선(신안선) 발견 40돌을 맞아 펴낸 이 책은 수중고고학에 대한 개설적 설명으로 시작해 신안선 발굴, 고려 최고 권력자에게 바칠 진상품을 실었던 태안 마도선,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깃든 진도 울돌목 명량해전 해역 등의 수중 발굴 과정에서 벌어진 일화들을 담고 있다. 청자 접시를 휘감은 주꾸미 덕분에 알려지게 된 태안 수중 유물들의 요지경, 난파선에서 나온 갖가지 쇠솥들로 추적한 옛 뱃사람들의 먹거리 등등을 통해 온갖 악조건을 딛고 세계적인 발굴 성과를 일궈낸 국내 수중고고학자들의 열정과 노력을 알게 된다.
<한국의 보물선…> 말고도 눈길 가는 고고학 신간들이 최근 많이 나왔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가 쓴 <신라와 일본>(진인진)은 적대관계로만 인식되어온 신라-일본의 고대사가 실제로는 밀접한 문물 교류에 바탕한 공생공존의 역사였음을 실증한다. 신라산 문물이 5~6세기 일본열도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교섭이 대폭 확대되고 백제가 멸망한 7~8세기에도 인화문 토기, 화장묘, 풍수사상 등의 신라 문화가 노도처럼 유입된 양상을 현지 유적·유물에 대한 조사보고를 통해 밝히고 있다. 특히 8세기 일본 왕실창고 쇼소인 소장품에 보이는 서역계 문물에 대한 애호 풍조가 5세기 이래 서역계 유리 제품 등을 전파한 신라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라는 논지가 흥미롭다. 저돌적인 현장연구자인 박 교수는 제자, 동료 학자들과 함께 쓴 <가야고고학개론>, 일본 저술 번역서인 <실크로드의 고고학> <일본 코훈시대 연구의 현상과 과제 상·하>(이상 진인진)도 함께 냈다. 이밖에 일본 학자 하부 준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유명한 일본 조몬시대(기원전 1만4500년~기원전 300년)의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개괄한 <일본조몬고고학>(사회평론)도 강봉원 경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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