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옛 대관정의 2층 양옥의 전경을 담은 사진엽서. 안창모 교수가 소장해온 것으로 1층 둘레에 기와지붕 회랑을 두른 건물의 세부 모습을 볼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 보존의 새 이정표가 세워진 겁니다. 옛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적은 있어도 옛적 도시계획의 흔적인 거리 자체가 보존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근대건축사가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의 평가대로 지난 14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역사적인 보존 결정을 내렸다. 구한말 고종의 도시계획 구상에 따라 대한제국이 태동한 핵심 요람이었던 서울 소공로 일대의 방사선형 근대 거리를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9월9일치 <한겨레> 보도로 부영그룹이 대한제국 영빈관 터였던 소공로 103번지의 대관정과 그 부근 소공로 일대의 근대 빌딩군을 사들여 터 위에 27층짜리 호텔 건립안을 추진하고, 문화재위원회까지 통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터를 지키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훨씬 높았던 게 사실이다. 대관정터가 영빈관에 이어 1905년 을사늑약을 겁박한 이토 히로부미와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조선주차군 사령관의 본거지로 무단 점유됐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수천억원대의 막대한 땅값을 보상하지 않는 한 개발 바람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상황을 바꾼 건 서울시 쪽이었다. 호텔 건립안이 지난해 10월 도시건축공동위에서 가결될 당시 위원회가 대한제국의 도시계획 흔적을 남기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자, 시 쪽은 도심유산 보존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정책기조에 맞춰 건축 전문가들과 함께 부영 쪽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소공로변 도로폭을 보존하고, 주변에 20~30년대 지어진 근대 빌딩 보존 방안에 대해 부영 쪽과 1년여간 밀고 당기는 설득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보존 대상으로 거론된 소공로변 근대 건물 7동 가운데 2채를 헐고 80년 된 한일빌딩을 비롯한 나머지 건물은 전면 외벽을 보존하되 1층은 기둥을 세워 인도공간으로 틔워주고 내부는 자유롭게 재활용하는 안으로 의견을 모았다. 법적으로 문화유산 지정을 강제한 것도 아니고, 기업이 이미 기본 절차를 통과해 호텔 건립을 강행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시와의 오랜 논의를 거쳐 근대공간 보존에 서로 협업한 첫 사례라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아름다운 결말을 맺으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새로 지을 27층 호텔의 정면 2층 부분에 전시관으로 들여놓기로 한 옛 대관정터 복원 방안이다. 지금 계단과 벽돌 유구 등이 남아 있는 대관정터는 원래 경성 시내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지어졌다가 70년대 초 철거된 빅토리아 양식의 고풍스런 양옥이었다. 부영 쪽은 터 자체를 떠서 호텔 2층 부분에 들여놓고 전시관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지만, 전시관의 구체적인 세부는 앞으로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해 확정해야 한다. 최근 안창모 교수가 새로 공개한 구한말 대관정 사진을 보면 2층 건물의 장중한 옆면 난간과 하부 구조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독일 황제의 동생인 하인리히 친왕이 1899년 방문했고, 일제 침략자들이 조선 병탄을 획책하는 본거지로 썼던 이 역사적 건물을 원형 복원해 스토리텔링이 깃든 최적의 역사 콘텐츠, 호텔 브랜드 상징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초현대식 호텔과 대한제국 역사유적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 찾기에 부영 쪽과 당국은 계속 머리를 맞대야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