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협옹주 무덤의 부장품을 묻은 석함에서 나온 18세기 왕실여성의 화장 관련 도구들. 10점에 달하는 청화백자합(위 사진 가운데 파란 무늬 도자기들) 안에는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가루와 액체 등이 담겨있었다. 손잡이 달린 일본제 청동거울(맨 오른쪽)과 거울 손잡이 옆에 있는 연지 추정 그릇도 주목된다. 이 그릇에는 연지로 추정되는 붉은 안료와 연지를 얼굴에 찍는 도구까지 담겨있어 당대 화장술의 구체적인 양상을 알려준다.
위에서 내려다본 화협옹주 무덤 전체 모습. 관 구덩이와 이를 덮은 회곽, 바로 옆 묘지석이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부장품을 넣은 석함들이묻혀있다.
18세기 조선 영조 임금의 셋째 딸로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1735~1762)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1733~1752)의 무덤이 경기도 남양주에서 발견돼 화제다. 특히 무덤에서는 영조가 지어 새긴 지석(誌石:망자의 인적 사항, 정보를 기록해 묻은 편편한 돌)과 화장품 추정 가루물질이 든 청화백자합 같은 당대의 여성 전용품들이 다수 발견돼 학계의 눈길이 쏠린다.
발굴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은 최근 남양주시 삼패동 산43-1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화협옹주의 주검을 처음 묻은 초장지 유적과 석함, 지석, 청화·분채 백자, 청동거울 등의 유물들을 찾아냈다고 28일 발표했다.
이 무덤은 옹주와 남편 신광수의 합장묘다. 주검을 놓는 자리는 확인됐으나 유골은 남아있지 않다. 부부의 무덤은 훗날 남양주 진건면으로 이장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11살 때인 1744년 옹주 칭호를 받고, 그해 영의정 신만의 아들인 영성위 신광수와 혼인했다. 사서에는 미색이 뛰어났다는 기록이 전하며, 후사 없이 19살에 홍역에 걸려 요절했다.
연구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무덤은 지난해 8월 말(馬) 모양의 나무 조각물 파편과 한 변 길이가 약 50㎝인 석함 1개가 출토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뒤이어 지난해 11월 첫 발굴조사에서 백자 명기(明器:저승에서 잘 지내라고 빌며 묻는 작은 물건들) 3개가 담긴 석함 1개가 나왔고, 이달 6∼15일 2차 발굴조사를 벌여 화협옹주의 무덤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지석과 석함을 발굴하게 됐다고 한다.
무덤 주인이 화협옹주라는 건 무덤 안 두 개의 회곽 가운데 오른쪽 회벽 쪽에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라는 묘지석 글자들이 확인되면서 밝혀졌다. 주민들의 신고로 무덤 근처에서 별도 수습한 지석에는 영조가 지은 글귀를 새기고 먹으로 칠한 ‘어제화협옹주묘지’(御製和協翁主墓誌)란 명문이 보인다. 앞면, 뒷면, 옆면에 394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먼저간 딸에 대한 영조의 애틋한 슬픔을 읽을 수 있다.
화협옹주의 초장지 무덤 유적을 가까이서 내려다본 모습. 겹으로 되어 콘크리트층 같은 두꺼운 회곽과 관을 안치했던 매장주체부가 보인다. 회곽 오른쪽 옆에 ‘조선화협옹주지묘’라고 쓰여진 묘지(무덤주인 표석)가 놓여 무덤주인을 알려준다. 이 묘지는 회로 된 정사각형 조각에 각각 먹으로 글자를 쓴 뒤 세로로 이어붙여 만들었다.
또하나 주목되는 것은 화장품류로 추정되는 내용물들로 채워진 청화백자합과 분채백자 등의 화장 관련 도구들이다. 특히 석함에서 나온 청화백자합 10점의 용기 안에는 당대의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분말 물질과 액체가 남아있어 앞으로 진행될 과학적 분석 과정에서 어떤 성분이 검출될지 주목된다. 안에 붉은 안료를 담고 연지 곤지를 찍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까지 담은 작은 용기도 함께 나와 학계에서는 당대 화장술, 화장행위를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청동거울은 표면의 명문을 판독한 결과 당대 일본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 확인돼 입수, 매납 경위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이외에도 목제합, 청동거울, 거울집, 목제 빗 등 당시 궁중여성들이 사용했던 화장, 치장용 도구 등이 많이 나왔는데, 화협옹주가 몸소 썼던 물건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조사팀은 보고있다.
연구원의 김아관 실장은 “조선시대 왕실 여인들의 생활 유물들은 유기물 자료가 드물고, 실물도 별로 남아있지 않아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소중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사대부가와 혼인한 왕실여성의 상장례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뿐아니라 화장도구로 추정되는 기물들이 확인된 점도 가치를 더해준다”고 말했다. 연구원 쪽은 추가 발굴조사를 벌여 묘의 구체적인 조성방식 등을 파악하기로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고려문화재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