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 논란을 빚어온 증도가자의 일부 활자들. 고미술상 김종춘씨의 소장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인지를 놓고 6년간 진위 공방이 계속되어 온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문화재 당국이 정밀분석한 결과 이를 확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작 시기를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현재까지 확보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고미술업자 김종춘씨가 소장해온 ‘증도가자’ 101점을 1년여간 정밀분석한 조사결과를 30일 공개하면서, 세계 최고의 진품 금속활자를 증명하는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증도가자는 13세기 고려시대 펴낸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를 인쇄할 때 썼다는 주장이 나온 금속활자다. 현재 국가보물로 지정된 3종의 <증도가>(삼성출판박물관, 공인박물관, 개인이 각각 소장)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금속활자 원본의 내용을 후대 목판으로 다시 찍은 복각본이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로 공인된 금속활자본은 1377년 간행된 <직지심체요절>(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이다.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확정되면, <직지…>의 활자보다 138년 이른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가 된다. 소장자 김씨는 증도가자를 2010년 9월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며 언론에 공개한 뒤 이듬해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증도가자로 찍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아 활자의 입수경위, 제작지 등을 놓고 진위 논란이 불거졌고, 2015년 6월 문화재위원회 결정으로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이 꾸려져 지금까지 전문가 조사를 진행해왔다.
문화재청이 내놓은 조사자료를 보면, 증도가자 활자의 서체는 상당수가 보물 <증도가>에 나온 서체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윤곽선 분포의 수학적 계산 기법, 딥러닝 기법, 글자 중첩 비교법으로 두 서체를 비교 검증해보니 유사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 이하로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증도가자의 활자를 3개 유형(홈형, 홈날개형, 네다리형)으로 나눠 <증도가>복각본 목판에 맞춰 짜넣는 조판 작업을 벌인 결과 크기가 가장 작은 홈형 활자를 넣었을 경우에만 복각본의 광곽(匡郭:글씨를 둘러싼 사각형 선) 범위 안에 들어가는 것로 나타났다. 증도가자 활자 크기가 홈형을 제외하면, <증도가>의 글자들을 찍는데 적합한 크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보물758-1호). 13세기 금속활자로 찍은 원본을 목활자로 다시 찍은 복각본이다. 고미술업자 김종춘씨는 자신이 소장한 증도가자 활자가 현재 전하지 않는 <…증도가>원본을 찍은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라고 주장해 논란이 계속돼 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X선 형광분석, 에너지분산 형광분석 등 12가지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증도가자는 구리, 주석, 납 합금으로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또 활자의 성분들 가운데 납의 산지는 충남 옥천, 영남 일대의 암석층인 것으로 나타나 국내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활자의 금속재질만으로 정확한 제작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며 “활자에 묻은 옛 먹이 단서가 될 수 있지만 현재 먹이 남아있지 않고 먹이 남아있어도 후대에 묻힐 가능성도 있어 연대 파악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상세한 조사 결과는 문화재청 누리집(www.cha.go.kr)에서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내년 2월중 증도가자 분석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열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청은 이후 분석결과와 각계 의견들을 검토해 조사보고서를 내고 이를 토대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