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 감일지구에서 지난해 하반기 드러나 초기한성백제시대의 석실묘 유적. 서울 잠실 석촌동고분, 몽촌토성 유적과 직결되는 당시 백제 유력계층의 대규모 무덤떼로 드러나 관심을 모은다. 석실묘 앞에 길쭉하게 판 배수로는 한성백제기 무덤에서 처음 확인되는 것으로 웅진, 사비시대 백제 무덤의 배수로 얼개의 원형이란 점이 주목된다.
“일단 파서 조사하는 땅 크기부터 줄여야 돼요. 그게 신라 조상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겁니다.”
국내 고고학계의 한 중견 학자가 신라 천년 궁터인 경주 월성 유적의 올해 발굴조사 전망에 대해 묻자 던진 말이다. 그만의 견해는 아니다. 지난해 연초부터 내내 속도전 발굴, 졸속 조사 우려가 끊이지 않았던 월성 유적에 대해 문화재동네 발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올해엔 발굴 규모의 축소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5년 3월부터 정부와 경주시가 신라왕경 복원을 내걸고 월성 발굴에 착수한 이래 발굴주체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현재 한눈에도 버겁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발굴현장을 드넓게 벌여놓았다. 대형 건물터 14곳이 700여평에 밀집된 중앙부 시(C)지구 발굴을 시작으로 지난해 서쪽 에이(A)지구의 성터, 성문터와 북쪽 성곽 바깥의 해자(연못)터 발굴장까지 길이 1㎞ 넘는 거리에 발굴현장의 넓이만 2000평에 육박한다. 게다가 월성은 서기 4세기부터 8~9세기까지 수직으로 다양한 유적층이 겹쳐있는 곳이어서 층위별로 세심하게 발굴하며 성격을 파악해야한다는 난점도 있는데, 이런 부분까지 면밀히 고려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않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연구소쪽의 발굴 결과 궁터 지하에는 통일신라 2개 문화층과 이전 고신라 5개 문화층이 깔린 것으로 확인된 바 있고, 가장 이른 시기가 4세기다. 이후 9세기까지 왕궁 시설이 존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 연구소 쪽은 문화재청과 긴밀하게 협의하며 절대 속도전 양상으로 가지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보더라도, 너무 광대한 발굴면적을, 그것도 3개 핵심 지구의 유적들을 동시에 건드리면서 작업하는 것은 역부족이란 게 중론이다. 지난해 9월 한국고고학회의 ‘한국 발굴현상 진단’ 학술회의에서는 왕궁 복원을 염두에 두지 말고 친자연적 유적 정비와 장기발굴 재검토, 생태학·인류학·고동물학 등의 타학제 전문가들의 조사참여 방안 등이 제기된 바 있다.
‘테마파크’란 논란이 끊이지않는 황룡사터 유적의 대규모 장기 복원안도 대수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30년 안에 목탑까지 복원하는 안이 지난해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1차 접수 자체가 거부된 것이 단적인 반증이다.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건물을 콘크리트 건물로 바꾸면서 들머리에 황룡사역사문화관을 지난해 10월 졸속개관한 것도 여전히 말썽이다. 학계 의견을 수렴해 복원 조사 범위를 최소화시키고 막대한 예산지원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경주시와 경주가 지역구인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여론과 반대로 월성, 동궁·월지, 황룡사터, 대릉원 일대 등의 옛 건물을 복원하는데 2025년까지 무려 9540억원을 투입한다는 ‘신라왕경 복원·정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반면 지난해 각광받은 초기 백제 한성도읍시대의 유적 재발굴은 올해도 계속 관심을 모을 듯하다. 11월 발굴결과가 공개된 석촌동 고분 발굴은 주검과 부장품이 묻힌 핵심 공간과 무덤 전모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올해도 학술 발굴을 통해 초기백제의 무덤 양식과 생활상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 풍납토성과 더불어 한성백제 도읍에 대한 수수께끼를 품은 몽촌토성 저습지와 주거터 발굴 결과도 올해 기대되는 성과다. 이 유적들에서 2~3㎞ 거리에 있는 경기 하남에서 한성 백제 유력계층의 대규모 석실묘가 연말 드러난 점도 주목된다. 이 무덤떼 앞에서는 웅진·사비 백제 시기 무덤의 특징인 길쭉한 배수로가 확인돼 초기 백제문화가 충청권의 중후기 백제문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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