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최종 후보 면접심사를 마친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공모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 연말부터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X): 90년대 한국미술’ 전시장 모습.
서울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양대 전시기관으로 꼽힌다. 새해 1월 취임할 이 미술관의 수장을 뽑는 신임 관장 공모를 놓고 이런저런 뒷말들이 연초부터 미술판에 무성하다.
2012년 취임해 연장 임기를 다 채우고 11일 퇴임을 앞둔 김홍희(69) 현 관장이 후임 관장 공모에 다시 응모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울시 인사위원회가 지난달 시 누리집에 관장 공모를 내자 그는 10명의 다른 응모자들과 함께 원서를 냈고, 새해 6일 최종 공모 후보자로 선정된 7명의 심사에도 나와 면접을 치른 사실이 확인됐다. 다른 후보자는 미술평론가 ㅈ씨와 ㅇ씨, 미대 교수 ㅊ씨 등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은 박원순 시장의 문화계 측근이다. 다수의 국내외 현대미술 기획전과 외부 기획전을 통해 미술관 조직을 안정화시켰다는 평가 속에 시장의 깊은 신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일 퇴임을 앞둔 상황인데도 관장실 주변의 짐을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주위에선 김 관장이 계속 관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응모자들을 들러리 서게 한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돌고 있다. 한 응모자는 “원서를 내기 전 인력 모집 기관인 헤드헌터 관계자들이 관장 공모에서 젊은 미술인을 뽑는다는 말을 퍼뜨린 것으로 안다. 그렇게 소문이 났는데, 임기를 다 채운 김 관장이 다시 응모했다는 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라고 했다.
국내의 역대 국공립미술관 관장 가운데 규정 임기를 채운 전임자가 다시 관장 공모에 응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미술관 쪽은 서울시의 계약직 공무원 임용 규정상 김 관장이 다시 공모한 것은 전혀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임한 임기까지 모두 채웠고, 원로급 미술인에 속하는 김 관장이 전례 없이 재공모한 배경을 놓고 미술판에서는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술관 내 김 관장의 한 측근은 “남서울 및 북서울 분관 운영 등 재임 중에 벌여놓은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고민하다 연임 의지를 굳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 중 하나다. 내년까지 스페인 출신 기획자 바르토메우 마리가 관장을 맡기 때문에, 올해 1월 퇴임하면 관장 공모 때까지 상당 기간을 직위 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업무 안정성을 명분으로 관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 쪽이 인사위원회에서 김 관장을 연임시킬지 다른 소장인사를 낙점할지 ‘정무적 판단’을 놓고 미술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