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해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로 고발된 입장을 고려해 답변하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블랙리스트 있는 것 맞죠? 존재하냐, 아니냐, 그것만 대답해요!”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18차례나 존재 여부를 거듭 묻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결국 풀죽은 목소리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블랙리스트는 작성한 적도, 지시한 적도, 본 적도 없다거나 ‘특검에서 조사할 것’이라고 지난 11월 국정조사 청문회 때 내놓은 판 박힌 해명에서 뒤늦게 물러선 것이다. 언제 알았느냐는 의원들의 날선 추궁이 다시 이어졌다. 그는 “직원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는 보고를 받은 게 제 기억으로는 올 초”라고 했다. “(지원을 배제할 문화·예술인 명단을 적은) 표를 직원이 만들었다는 말을 연말에 들었고, 여러 업무 협의가 축적된 결과, 1월 초에 우상일 예술국장으로부터 (리스트가 있다는) 확정적 보고를 받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 장관은 9일 국회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위 7차 청문회에 나와 의원들 앞에서 처음 블랙리스트 명단의 존재를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앞서 이날 오전 ‘이미 위증으로 고발돼 청문회에서 기존과 다른 진술을 할 경우 혐의가 추가될 수 있고 기존과 같은 진술을 할 경우 반성의 기미가 없는 진술이 될 우려가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에 김성태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자 그는 오후 뒤늦게 출석해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집중질의를 받았다.
궁지에 몰린 조 장관은 김 위원장의 양해를 얻어 “문화예술 정책 주무 장관으로서 논란이 됐던 블랙리스트 문제로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국민들께 고통과 실망을 야기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부처의 책임은 언급하면서도 자신이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 작성 전달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 장관은 “그동안 문체부가 스스로 철저히 조사해서 전모를 확인하지 못하고 리스트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면서도 “작성 전달 경위는 모르기 때문에 답변드릴 게 없다”고 했다.
박영선 의원이 조 장관 취임 뒤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축소 제한하는 업무보고가 있었다는 문체부 내부인사의 제보를 공개하면서 보고를 들었냐고 추궁하자 조 장관은 “9월 첫 주에 예술인 지원을 배제하라는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어 “리스트가 있었다면 실제 작동됐는지 한번 점검해보자고 해서 (부처 안에서) 여러 차례 점검했는데, (언론에 보도된)일부 명단의 인사들 중 770여명이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리스트가 작동이 됐는지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다”면서 “(정무수석 당시에는) 블랙리스트에 관해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적도 전혀 없고, (김기춘)실장이나 그 누구부터도 지시받은 적도 없고, 누구에게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는 해명을 되풀이하며 책임을 피해갔다. 그는 또 자신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정무수석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외비 문건 ‘정무리스트’를 도종환 의원이 내보이며 작성 여부를 묻자 “전혀 본 적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없고,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지난 3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1차관과 함께 국정조사 특위에 의해 고발된 바 있다.
사실상 국조특위 마지막 청문회였던 이날 자리에는 증인 20명 가운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대통령 헤어·메이크업 담당 정송주·정매주씨 자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 16명이 나오지 않았다. 국조특위는 이들을 비롯해 그동안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나오지 않은 32명을 고발했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원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정유라 특혜입학 의혹 관련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노형석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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