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타계한 존 버저, 그의 삶과 사진
20년 친구였던 틸다 스윈턴이 직접 감독하고 출연한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존 버저의 사계’의 한 장면. 존 버저(왼쪽)와 틸다 스윈턴. EIDF 사무국 제공
예술평론가, 소설가, 화가, 시인 유독 사진 등 시각문화 관심 커
수십권 저서 중 사진 주제 10권 넘어 그림이 체계에 바탕 둔 문법이 있다면
사진은 언어가 없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림이 번역이라면 사진은 인용 그래서 사진은 거짓말 할 수 없지만
모호성 때문에 왜곡에 이용될 수도 마르크스 인본주의자로
피카소 등 예술권력과 심미주의 비판 이주민 노동자 열쇳말로
세계화 위기 일찌기 경고도 2부에서 버저는 옛 회화의 거장들 중 일부만이 여성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을 뿐 나머지는 남성들의 성욕이나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그림이라고 역설했다. 옛 거장들의 누드에 들어 있는 성차별주의를 정면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100만권 넘게 팔렸다. 한 예술사가는 이 책을 <마오쩌둥 어록>(Little Red Book)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한국에선 <다른 방식으로 보기>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됐다. 존 버저는 사진가 장 모르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포토저널리즘을 개척하고, 사진과 글의 독자성과 협업 방식을 쉼없이 고찰했다. 1967년 최초의 협업 작품집인 <행운아>는 시골 의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최초의 포토스토리라고 불리는 사진가 유진 스미스의 ‘시골 의사’(Country Doctor, 1948년)에 대한 오마주라고 봐도 무방한 이 책을 통해 존 버저는 사진과 글이 각각 독자적이고 동등한 관계에 있다며 그 둘이 결합되었을 때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브레히트나 베냐민이 사진이 대중들을 계몽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하면서도 “(사진은) 모호하게 읽히기 십상이었던 나약하고 불완전한 매체”라고 규정하며 지식인들의 의무는 대중을 위해 사진에 진실된 해설을 더하여 한다고 강조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1975년 장 모르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르포르타주 <제7의 인간>에서 그는 사진과 글의 독자성과 협업 가능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서유럽과 북유럽에 거주하는 이민노동자를 다룬 <제7의 인간>은 이후 전개될 세계화의 위기에 대한 선각자적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90살 생일에 즈음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존 버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자신을 유럽인으로 규정하며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투기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고 국민들은 그들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렸다. 브렉시트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발로 투표했다”고 답했다. 영국인인 존 버저 스스로 이미 1962년에 ‘영국에서의 삶이 혐오스러워서’ 프랑스의 알프스 산록에 있는 농촌마을로 이주했고, 말년까지 농사와 글을 지으며 살았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사진과 글 분량 다양하게 바꾸는 시도 사진에 관한 연구이자 사진과 글의 협업에 관한 고찰의 완결판은 1982년에 나온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다. 존 버저는 이 책에 대해 “우리(존 버저와 장 모르)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이 삶을 담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고 사진에 관한 책도 내고 싶었다. 사진이 도대체 무엇이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카메라의 발명 이후 계속 제기되어온 이런 물음들에 대해 답변을 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과 글의 분량을 여러 가지로 바꿔가는 시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기의 다른 방식>에서 존 버저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본질을 찾아가면서 말한 그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사진의 탄생과 더불어)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코드 없는 메시지와 마주쳤다.” 그리고 버저는 부연 설명했다. 카메라는 모습을 실어나르는 상자이며 사진은 대상을 선택하는 문화적인 구성이란 것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선택한다면 사진에 포함이 될 것이고 거부한다면 사진의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 선택과 거부를 통해 문화적 정돈이 이루어진다. 구성(프레임에 넣는 것)과 정돈(넣지 않는 것)의 기준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진가의 삶과, 주장, 의견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또한 그 사진이 실리는 신문, 책, 전시에 따라 다르게 비칠 것이다. 이것은 같은 사진이 어떤 이념을 가진 신문에 실리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존 버저는 그림과 사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번역이고 사진은 인용이란 표현이 그것이다. 그림 위에 있는 모든 형상은 의식의 중재를 거친 다음에 형성된다. 반면에 사진은 받아들여진다. 그림에선 사과가 둥근 구형으로 만들어진다면 사진에선 사과의 둥그란 모양과 빛, 그림자가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또 한가지 그림과 사진의 차이는 문법의 유무에 있다. 그림은 체계적이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에 바탕을 두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밑에 있는 젊은이는 송나라 시대의 젊은이과 다른 훈련을 받고 다른 문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은 언어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은 대대적인 속임수와 왜곡에 이용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사진의 모호성 또한 사진의 속성인 ‘그것은 거기에 있었음’과 더불어 사진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카파가 말한 “가까이” 강조 그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어떻게 규정했을까. 1995년 비비시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러미 아이작스와 대담하면서 일생의 주제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자 존 버저는 “하나만 들어보라면 이민자들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민자이며 나의 첫 소설이 런던에 사는 헝가리 출신 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시대의 화가>였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다”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그러한가라는 질문에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인지의 여부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마르크스에 대해 읽고 공부를 했는지에 달려 있다. 나에게 붙은 그 꼬리표는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규정을 내린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반면에 (나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묻는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맞다”고 받아쳤다. 영국 사람인 그는 프랑스의 농촌에서 농부로 살았지만 결국 참관인(observer)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며, 직접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살았지만 나는 현지 주민이 될 순 없다. 나는 결국 참관인일 수밖에 없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면 전쟁사진의 신화 로버트 카파가 남긴 유명한 구절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히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 진정한 사람들을 보려면 가까이서 관찰해야 한다.” 존 버저는 또 “내가 만약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많이 듣고 다닌 덕분이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들으려고 해왔다”고 말했다. 존 버저, 롤랑 바르트와 더불어 현대 사회 속의 사진 역할과 철학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발표했던 수전 손택은 존 버저와 장 모르 공저인 <제7의 인간>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존 버저의 책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는 단지 재미있는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에 대해 쓴다. 내가 볼 때 오늘날 영어권 작가들 중에선 존 버저가 으뜸이다. D.H. 로런스 이래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책임감을 갖고 세속 세계를 이만큼 주의 깊게 쓴 작가는 없다. 시인으로선 로런스보다 다소 떨어지겠지만 존 버저는 로런스보다 더 지적이며 더 시민적이며 더 기품이 있다. 그는 놀라운 예술가이며 사상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국내 사진계도 잇단 추모 행사
책과 초상사진 전시…북토크도
50년 친구인 사진가 장 모르가 2006년에 퀸시에서 찍은 존 버저.
국내에서 번역된 존 버저 책 표지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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