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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지진 악몽’ 꾸는 다비드상

등록 2017-01-28 20:42수정 2017-01-28 20:57

이탈리아 지진 이어져 붕괴 우려
이미 다리·발목에 미세균열 확인돼
높이 5m, 무게 5t 진동에 취약한 자세
전문가들 “내진설계 전시관 만들어야”
최근 이탈리아에 지진이 잇따르면서 붕괴 우려가 나오고 있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다비드상.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만든 세계 조각사상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최근 이탈리아에 지진이 잇따르면서 붕괴 우려가 나오고 있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다비드상.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만든 세계 조각사상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의 걸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품으로 널리 알려진 다비드상(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이 지진 피해의 악몽에 휩싸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연말까지 이탈리아 중부 산악 지방에 거듭된 강진으로 숱한 인명 피해와 함께 상당수 문화유산들이 파괴되는 비극이 빚어진 가운데 다비드상이 있는 중부 토스카나의 주도 피렌체 인근에도 여진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현지 지질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다비드상이 있는 피렌체시에 여진으로 감지된 미세진동만 250차례 이상 일어났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이탈리아국립지질화산연구소 쪽도 지난 12월 중순 피렌체시와 시에나시 사이에 있는 키안티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3~4에 달하는 두차례의 지진파를 감지했다고 밝혔다. 인적 물적 피해는 별로 없었으나 진앙이 피렌체 남쪽에서 불과 30km 떨어진 지점이었다. 피렌체는 역사적으로 100차례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활성화단층 지역이다. 다비드상을 비롯한 르네상스 문화유산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새삼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이번 지진을 계기로 다비드상 하부의 발목 부분의 취약성에 대한 논란이 한층 불거질 조짐이다. 이미 2014년 이탈리아 국립연구협의회의 과학자들은 전체 무게가 5톤에 달하는 다비드상의 다리와 발목 부분에 미세한 금이 가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방치할 경우 자체의 육중한 무게가 가중돼 넘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최근 지진사태로 이런 주장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우려는 근본적으로 높이 5m를 넘는 거대 인물조각인 다비드상이 외부 진동에 취약한 자세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공화정 정부의 의뢰를 받아 1501~1504년 대리석으로 상을 제작할 당시에 고대 그리스 로마조각에서 유래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기법으로 몸체를 다듬었다. 콘트라포스트는 조각사 용어로, 몸체의 무게중심을 한쪽 다리에 놓고 다른 쪽 다리는 살짝 걸치듯 구부려 몸체의 선이 전체적으로 S자형이 되는 자세를 말한다(전통 불교미술에서는 불상을 이를 때 비슷한 용어로 ‘3곡(三曲)’ 자세란 표현도 쓴다). 미켈란젤로는 거인 골리앗과 싸우기 직전 전투를 준비하는 10대 소년 다비드의 긴장된 자태를 이런 콘트라포스토의 구도 아래 몸 근육과 힘줄 등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살려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로만 상의 무게 대부분을 지탱하며 왼쪽 다리를 가볍게 내딛는 역동적인 ‘포즈’가 후대 거듭되는 지진의 진동에 구조적 약점을 노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이래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결과를 요약하면, 다비드상은 3세기 이상 전시되면서 발목 부분이 크게 약해져 현재 상당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미켈란젤로가 상을 제작할 당시 40년 이상 방치되어있던 조악한 재질의 대리석을 재료로 쓴데다 상의 무게중심이 불안정한 상태로 계속 전시된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작은 지진이라도 거듭되면 다비드 상의 발목 부위 균열이 큰 균열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전복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또, 다비드상이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해마다 전세계로부터 200만에 육박하는 관객들이 몰려와 상 주변에서 이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미세진동에 따른 훼손 우려도 적지않다. 최근에는 인근에 고속철 공사가 진행돼 고속철 주행에 따른 진동 피해 우려까지 제기되는 형편이다.

최근 지진이 피렌체 인근 지역에 계속 내습하자 다급해진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방진 대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서구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 보도에 따르면, 현지 건축가 페르난도 데 시모네는 “너무 늦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며 다비드상을 비롯한 피렌체의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예술품들을 선별 소장할 별도의 ‘방진 전시관’ 건립을 시의회에 촉구하는 중이다. 세실 홀베르그 아카데미아 미술관장도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이탈리아 문화부장관과 지진방재 보존계획을 세우기 위한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피렌체 시정부 쪽은 2015년 내진대 설치 등에 필요한 20만 유로(한화 약 2억 5000만원) 정도의 방재 비용을 이탈리아 중앙정부에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정부쪽은 다른 지진피해 복구에 매달려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1997년 기독교 성지 아시시의 지진으로 성프란치스코 성당과 내부 벽화가 무너지는 사태를 겪은 뒤 역사적 유적과 예술품들의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는 법령을 제정했지만, 예산부족과 관료주의 탓에 복구와 방재대책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다비드 상은 설치된 장소가 여러차례 뒤바뀐 이력을 갖고 있다. 원래 거대한 돔 지붕으로 유명한 피렌체의 상징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지붕 장식물로 구상됐으나, 완성된 뒤엔 현 피렌체 시청인 베키오궁 앞의 시뇨리아 광장에 세워졌다. 당시 시민들이 다비드상을 메디치가 등의 독재적 권력을 몰아낸 공화정부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 들어 이런 상징성보다는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청년상 자체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드높아지자 1873년 다비드상은 보존을 위해 미술교육기관이던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른다. 원래 상이 있던 시뇨리아 광장에는 같은 크기의 복제품이 세워졌고, 시가를 굽어보는 ‘미켈란젤로의 언덕’에도 수십여년전 청동 복제상이 들어서 현재 피렌체에는 원작을 포함해 세 종의 다비드상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맞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에 비견될만큼 유명세를 지닌 작품이라 의도적 훼손에 얽힌 수난사도 따라다녔다. 1527년 피렌체 시민들의 봉기 당시 돌팔매질하려는 자세를 취한 왼쪽 손이 부서졌고, 1991년에는 한 이탈리아 작가가 상 왼발의 발가락을 둔기로 찍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비드상은 앞으로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지진이 날 때마다 방재 논란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오래 전부터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억측에 휩싸여왔고, 지난해에도 경주 지진으로 한바탕 입길에 올랐던 신라유적 첨성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지진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엄습하는데도 좀처럼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부당국의 문화재 방재대책에 대한 불신이 쌓여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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