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경주 신라왕릉의 오랜 미스터리 하나가 풀렸다

등록 2017-02-09 09:04수정 2017-02-10 14:25

황복사터 동쪽 ‘석재’ 많은 고분터, 알고보니 미완성 왕릉터
8세기 효성왕 무덤 쓰려다 중단된 이후부터 석재는 재활용
면석·갑석·석조부재 다수 출토…왕릉 축조과정도 처음 밝혀져
구황동 왕릉 추정터 유적 발굴 현장 전경.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중간에 수레바퀴 자국이 난 도로터가 보이고 아래편에 건물, 담장터와 석물들 모습이 보인다.
구황동 왕릉 추정터 유적 발굴 현장 전경.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중간에 수레바퀴 자국이 난 도로터가 보이고 아래편에 건물, 담장터와 석물들 모습이 보인다.

경주 신라 왕릉에 얽힌 오래된 미스터리 하나가 마침내 풀렸다.

경주시 구황동 황복사터 동쪽 보문들에 널브러진 무덤 석재들과 함께 전해져온 7~8세기께의 고분터 추정 유적이 베일을 벗었다. 그동안 황복사의 목탑터인지 왕릉인지, 왕릉이라면 누구의 것인지를 놓고 수십여년간 학계의 설왕설래가 이어져온 이 유적이 최근 발굴조사 결과 거대 왕릉으로 쓰려고 만들다가 중단돼 미완성인 채 버려진 가릉(假陵)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 무덤은 통일신라의 전성기였던 8세기초 5년만 재위하고 숨진 뒤 화장된 효성왕(재위 735~742)이 원래 주인일 것이라는 추정이 유력해 더욱 주목된다.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렬)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구황동 고분추정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왕릉급 무덤의 일부로 조성하려다 중단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석재들과 이후 조성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담장, 배수로, 도로 등의 유적을 확인했으며, 막새, 기와, 전돌, 등잔 등 유물 300여점도 함께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원 쪽은 실체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어온 무덤 석재들을 발굴해 분석한 결과 십이지신상 등을 새기기 위해 다듬은 특유의 조형 방식이 성덕왕과 경덕왕 재위 사이의 8세기초로 파악돼 효성왕의 무덤용 부재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또 석재가 남아 널려있던 자리는 원래 왕릉터가 아니라 이 석재를 재활용해 지은 후대의 통일신라시대 건물터이며 유적 북동쪽이 왕릉 자리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에 따르면, 논두렁 등에 일부 남아있던 기존 석재와 발굴로 새로 드러난 석재를 조사한 결과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이후부터 왕릉에 쓰인 석재와 동일한 형식이고, 크기나 제작 방식도 기존 왕릉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발굴된 석재 일부인 갑석의 곡률을 계산해 어림잡은 왕릉의 직경(지름)은 약 22m 정도로 전 경덕왕릉(765년)과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에 따라 원래 무덤을 쓰려했던 이는 효성왕이 유력해졌다고 조사단은 보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효성왕이 사후 유언대로 관을 법류사 남쪽에서 화장해 동해에 뿌렸다는 기록이 전하고, 재위기간이 5년에 불과했다는 사실 등이 그런 방증이 된다는 것이다. 병약했던 효성왕이 생전 묻힐 능침을 준비하다 숨지기 전 유언으로 화장을 택하자 짓던 무덤과 석물을 방치하게 됐으며, 후대 자연스럽게 황복사터 금당터 기단부 면석과 능지탑의 탱석, 현재 발굴장소의 건물터 등에 재활용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일부 석재들 가운데 탱석은 원석에서 십이지신상을 떼어내 황복사터의 기단과 낭산 서쪽편 능지탑 탱석에 썼다는 것이 확인된다. 면석·지대석·갑석 같은 석재들을 무덤자리 부근의 후대 건물터에 재활용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점도 이를 입증한다는 설명이다. 조사단 쪽은 “발굴 현장에서 미완성된 장대석 석재 등이 다수 확인됐고, 석실 내부의 부재가 없는데다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재활용 용도로 잘려나간 점 등도 완성된 왕릉이 조영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짚었다. 또 왕릉터의 전체적인 층위와 해발고도가 부근 북천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 완성된 왕릉이 북천의 홍수로 파괴되었다는 그간 학계 일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단정했다.

현장에서 출토된 왕릉의 석재 유물들 가운데 왕릉의 봉분을 싸는 면석의 모습.
현장에서 출토된 왕릉의 석재 유물들 가운데 왕릉의 봉분을 싸는 면석의 모습.

현장에서 출토된 왕릉의 갑석 세부 모습.
현장에서 출토된 왕릉의 갑석 세부 모습.

무덤의 성격과는 별도로,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7세기 이후 신라 왕릉의 축조과정이 새롭게 드러난 것은 획기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무덤을 싸는 면석들은 각기 요철 모양의 연결부로 서로를 밀착시켜 봉분의 흙에 밀려내려가지 않도록 한 얼개를 띤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각종 화강암 석물들을 산지에서 먼저 다듬은 뒤 무덤 자리로 가져와 2차 가공하고, 떼어낸 파편들은 다시 무덤자리 진입로의 도로를 다지는 부재로 쓰는 등 치밀한 공정이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물증들도 상당수 확인됐다. 아울러 고분 추정터에서 새로이 드러난 통일신라시대 2동의 건물터에서는 신라 경주 6부중 하나인 습비부로 추정되는 ‘習部(습부)…’ 등의 명문이 적힌 기와조각이 수십여점 쏟아져 이 건물 성격이 당시 습비부를 관할하는 관청 등의 특수한 용도였을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있다.

발굴현장의 통일신라 건물터에서 출토된 ‘習部(습부)’ 명문이 새겨진 기와들. 신라 경주 6부의 하나인 습비부와 연관이 있는 명문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이 명문으로 미뤄 건물터가 습비부와 관련된 업무 등을 보는 특수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현장의 통일신라 건물터에서 출토된 ‘習部(습부)’ 명문이 새겨진 기와들. 신라 경주 6부의 하나인 습비부와 연관이 있는 명문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이 명문으로 미뤄 건물터가 습비부와 관련된 업무 등을 보는 특수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 남북 방향으로 난 길이 58m, 폭 18m의 도로터. 길죽한 선 모양의 수레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왕릉의 석재를 다듬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화강암 조각들을 깔고 모래흙과 자갈들을 덮어 조성했다. 신라 왕경 도로 가운데 가장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져 황복사나 왕릉 공사 당시 대형석재의 운송로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적 남북 방향으로 난 길이 58m, 폭 18m의 도로터. 길죽한 선 모양의 수레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왕릉의 석재를 다듬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화강암 조각들을 깔고 모래흙과 자갈들을 덮어 조성했다. 신라 왕경 도로 가운데 가장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져 황복사나 왕릉 공사 당시 대형석재의 운송로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에 발굴한 구황동 왕릉추정터는 지난 40여년간 실체를 놓고 여러 이설이 엇갈려왔다. 1968년 신라삼산오악조사단이 처음 시굴조사를 벌일 당시엔 문무왕 등의 왕족을 추복하기 위해 세웠다고 알려진 황복사의 초기목탑터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이후 현장에 널린 석재가 왕릉에 쓰인 부재라는 사실이 고증되면서 강우방 이대 명예교수는 신문왕릉설을, 고 이근직 전 경주대 교수는 성덕왕의 비인 소덕왕후 또는 효성왕의 비인 해명부인 김씨의 능일 것이란 설을 제기한 바 있다.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