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그는 조선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성이었지만, 그 대가로 남성 지식인들과 화단, 문단 등으로부터 질시와 악의에 찬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근대기 이 땅의 첫 여성 양화가로서 조선총독부 전람회의 단골 입상 작가로 이름 높았고, 문학동인 ‘폐허’에 가담해 시와 소설을 썼던 뛰어난 문인이었으며, 결혼할 신랑과 전 애인의 무덤을 찾아가 결혼을 보고하고 여성 의복 혁신, 자유연애를 주장했던 선구적인 여성주의 운동가였던 정월 나혜석(1896~1948). 이렇게 한국 문예사 다방면에 강렬한 발자취를 아로새겼던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충격적인 외도와 이혼, 절과 부랑시설에 의탁했던 비참한 만년을 지나면서 젊은 시절 누린 명성은 단박에 허물어지고 잊혀갔다.
나혜석학회(회장 이상경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처음 펴낸 나혜석의 공식자료집 <나혜석을 말한다>(황금알 펴냄·4만원)에서 노년 부랑자로 전락해 삶을 마친 이 여성주의 문예인의 삶을 날것 그대로 엿보게 된다.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나혜석 연구의 기반이 되는 각종 사료 130여편을 모은 책이다. 주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그가 벌였던 여성주의 논쟁 자료, 잡지 기사, 신문 기사, 단행본 글들을 실었는데, 당시 냉혹했던 사회상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2차 자료들이 많다. 부인 의복 개량에 대해 김원주(김일엽)와 벌였던 논쟁을 담은 20년대 <동아일보>의 기고글들을 비롯해 외교관 김우영과의 결혼생활과 국외여행, 나혜석을 포함한 장안의 미인이 누구인지를 시시콜콜하게 다룬 잡지·신문의 기사들, 나혜석 사후 조사의 의미를 담아 쓴 생전의 지인 염상섭의 소설 <추도> 등이 눈에 들어온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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