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은 서울 시민들이 남산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태극기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극우’ ‘친박’의 등록상표처럼 비치면서 자칫 혐오대상으로 전락할 판이다. `친박‘ 어르신들이 탄핵반대 집회에서 태극기를 성조기와 함께 들고 나와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구호를 외친다. 취재진과 탄핵 찬성 시민들을 깃봉으로 때리고, 집회 뒤엔 막 버리기도 한다. 이런 극우세력들 행태를 대표하는 아이콘(상징)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 연말 등장한 탄핵 반대 시위를 빼고 역사적으로 태극기가 특정세력만의 표식이 된 전례는 없다. 1882년 태극기가 국기로 정해진 이래 태극기는 일제강점과 해방, 4월혁명, 6월 항쟁을 거쳐 오늘날까지 줄곧 근현대기 한민족사의 상징이었다.
태극기 탄생은 대체로 1882년 조선 내정에 관여했던 청나라 사절 마젠충이 도상을 제안한데서 비롯됐다고 학계는 보고있다. 마젠충은 근대국가의 외교 표식이 필요하다며 청 국기인 황룡문양기에 바탕한 홍룡기 도안과 중국 고대경전 <주역>에 근거한 태극 팔괘의 도상을 제시했는데, 조선 정부는 태극도안을 택했다. 이듬해 박영효가 일본에 외교사절로 가던중 홍청색 태극문양과 사괘 도상으로 국기 3벌을 만들면서 조선왕조의 국기로 역사에 등장한다.
1960년 4·19혁명 당시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외교무대에서 주로 쓰이던 태극기는 1895년 국경절 도입과 1897년 대한제국 선포 등을 통해 거리에 게양되면서 민중에게도 알려졌지만 존재감이 미미했다. 국권 상징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1905년 을사늑약과 의병 전쟁, 1910년 한일병합, 1919년 3·1운동 등 조선 주권침탈과 관련된 여러 대사건들이 벌어지는 과정에서였다. 특히 3·1운동 당시 몰래 만든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에 쏟아져나온 군중 시위의 극적인 광경은 민족 주체성이 국기 안에 살아있음을 민중들이 깨닫는 전환점이 됐다. 그뒤 상하이 임시정부가 태극기를 국기로 삼고, 숱한 독립지사들이 태극기를 품에 안고 항일의거를 벌인 데는 이런 역사적 각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해방공간 시기 항일투쟁사까지 품게 된 태극기의 상징성은 더욱 커졌다. 반탁을 외친 우익이나 찬탁을 주장한 좌파 군중집회에서 태극기는 모두 볼 수 있었다. 좌우 세력에게 태극기는 제 각기 이념과 이상을 투영하는 공유된 아이콘이었다.
북한 정권도 1948년 공화국 수립 전까지는 태극기를 각종 집회에 반드시 내걸었다. 김일성이 처음 민중 앞에 나타난 1945년 10월 환영대회와 1946년 북조선 로동당 창립대회 등의 사진에는 대형 태극기(대한민국 태극기와 괘 배치가 다르다)가 뒷면에 내걸린 모습을볼 수 있다. 태극기 고유의 민족 대표성, 항일 투쟁의 표상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1948년 4월 북조선인민회의에서 남홍색 공화국기(인공기)를 확정하고 그해 9월 정권 수립 뒤부터 새 국기로 쓰기 시작한다. 당시 북조선 인민회의헌법제정위원장이던 국어학자 김두봉은 “봉건왕조의 유물이며, 태극기 도상의 핵심인 <주역>의 사상이 비과학적이어서 새 나라에 맞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고 전해진다.
1987년 6월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최루탄을 쏘는 경찰을 향해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시민. 87년 보도사진연감
북한과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적 유대감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인식하는 정서가 계속 깊어져왔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태극기를 관제 행사 등에서 널리 활용했다. 그러나 60년 4월 혁명, 80년 광주항쟁, 87년 6월항쟁, 88년 남북학생회담 등의 여러 민주화, 통일운동 노정과 2002년 월드컵 응원장에서도 태극기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6월 항쟁 당시 웃통 벗은 채 태극기를 뒤로 하고 대로로 달려나오던 부산의 청년과 태극기를 몸에 두른 88년의 남북학생 회담 대표단, 2002년 서울시청앞에 모인 붉은 악마 군중 등이 태극기의 보편성을 웅변하는 순간들로 한국인의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도상의 고답성과 주체적으로 국기를 창안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태극기의 본질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월간미술>3월호의 태극기 특집 기고글에서 “태극기를 대한민국과 동일시하는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며 국가주의 기호로서 오용될 수 있다는 경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