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미경의 그림나무
(6) 그림 그리는 이유
(6) 그림 그리는 이유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뒤늦게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처음 그림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의 기억들을 더듬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추억이, 나를 그림 그리게 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물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림 그리게 하고, 그리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지게 되기도 하는구나! . 오랫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아주 어릴 땐 “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너는 어떤 꽃이 좋아?” 하는 질문에도 크게 당황스러웠다. 초록색도 좋고, 보라색도 좋고, 주황색도 좋고, 개나리도 좋고, 민들레도 좋고, 봉숭아도 좋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나를 꼭 집어 선택할 수 있단 말이지? 나는 도대체 무슨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어떤 꽃,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라는 식의 글을 읽으면 더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도대체 누구지? 좀 더 자라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사회 속에서 규정되고 억압된 것이라는 사실이 싫고 화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듯싶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변한다는 것도 무서웠다. 직장생활 하고, 애 낳아 기르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서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일조차 잊어버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뒤늦게 하나씩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전혀 상상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채, 그냥 닥치는 대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려놓은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내는 것 같지만, 사방팔방 펼쳐진 세상에서 어떤 부분을 떼어내 그릴지는 어마어마한 선택이다. 물론 한두 시간 후딱 하고 마는 스케치 때는 다르다.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을 마구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거의 100시간 이상을 작심하고 그려야 하는 그림의 경우, 좋아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 그리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그린다는 것은, 그 대상을 눈물나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란 걸, 그리면서 깨닫는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리면서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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