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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문화재 약탈’ 일제 고미술상 ‘판매목록’ 나왔다

등록 2017-04-11 19:54수정 2017-04-12 00:07

주홍규씨 ‘문화유산 반출’ 논문

야마나카 상회 전람회 도록 입수
왕릉서 빼간 망주석·장명등에
석탑·백자 분청사기까지 수두룩

유럽, 미국 등으로 유물 팔려나가
현재 소장위치 등 거의 확인 안돼
“반출품 환수 위한 근거자료 될 것”
1934년 야마나카 상회의 판매전 ‘지나조선고미술전관’ 도록에 소개된 조선의 무덤 석등들. 도굴된 것이 분명한 석물들의 사진이 백화점 판매목록처럼 실렸다. 이 석물들이 어디서 반출돼 누구에게 팔렸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934년 야마나카 상회의 판매전 ‘지나조선고미술전관’ 도록에 소개된 조선의 무덤 석등들. 도굴된 것이 분명한 석물들의 사진이 백화점 판매목록처럼 실렸다. 이 석물들이 어디서 반출돼 누구에게 팔렸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80여년 전 일제강점기 때 뿌리 뽑힌 이 땅의 석조 문화재들은 백화점 상품처럼 취급받았다. 조선 사대부들 무덤과 절터에서 통째 도굴해온 석물과 석탑들이 일본 수집가 편의를 위해 현지 고미술업체의 판매목록에 줄줄이 사진, 명칭과 함께 실린 참혹한 모습이 처음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반출사를 연구해온 주홍규(47) 중원대 강사는 최근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학술지 <한국학논총>에 논문을 실어, 20세기 초 아시아 최대 고미술업체였던 일본 야마나카 상회가 조선의 석물과 도자기들을 반출, 판매한 도록 사진들과 관련 기록들을 내보였다. ‘야마나카 상회와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문화재’란 제목의 이 논문은 야마나카 상회가 장명등·망주석 등의 무덤 석물과 석탑·도자기 같은 조선 유물들을 반출 판매한 경위 등을 도록, 작품목록 등의 입수 자료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 앞서 20세기초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미국 컬렉터들에게 흘러들어간 한국 문화재들은 2012년 미국 스미소니안 연구소에서 펴낸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워싱턴 소재)의 한국미술> 도록을 통해 일부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한국 문화재들이 유출된 일본 현지에서의 판매전 도록과 자료들의 세부를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분석한 시도는 이 논문이 처음이다.

19세기 말 창업한 야마나카 상회는 20세기 초 아시아 고미술품 유통과 관련해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던 무역상이다.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데이지로가 1894년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중국 베이징 등에 점포를 차려 중국, 조선의 문화재들을 미국, 유럽, 일본 수집가들에게 파는 국제거간꾼 노릇을 했다. 특히 1923~36년 일본을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대전람회를 개최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 문화재를 서구와 일본에 반출한 원흉으로 지목되어왔다.

논문에서 가장 주목되는 성과는 현재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석물과 도자기 등 낯선 반출 문화재 100여점의 전시도록 사진들을 찾았다는데 있다. 주씨는 야마나카 상회가 1930년부터 38년까지 일본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진행한 각종 판매전람회 도록을 입수해 도자기류 40여점과 석물류 77점 등의 사진목록과 그보다 훨씬 방대한 작품목록 등을 분석했다. 1930년 ‘세계민중고예술품전람회’, 1934년 ‘지나조선고미술전관’, 1938년 ‘세계고미술즉매회대전관’ 등의 포스터와 일부 전시도록들이 보인다. 도록 사진들을 보면 임금 왕릉 또는 사대부 무덤에서 몰래 뽑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망주석과 장명등, 고찰에서 도굴한 다양한 종류의 석탑, 조선 백자와 1927년 정식발굴 전 도굴된 것이 유력한 계룡산 공주 학봉리 분청사기 등이 수두룩하다.

논문에 따르면, 옛 절터의 석탑과 왕릉, 사대부 무덤의 장식물인 장명등, 망주석, 석양, 신도비, 상석 등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 임의로 처분하거나 일반적으로 거래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야마나카상회는 이런 다수의 석물들을 불법적으로 유출해 매매했으며, 이런 사실은 다수의 석물들이 도판에 실린 전시도록과 판매목록을 통해 입증된다고 주씨는 논문에서 짚고있다. 이렇게 밀반출된 조선 유물들은 일본, 유럽, 미국 등에 고가로 팔려나갔으나 반출·판매 경위와 소장자 등의 정보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야마나카 상회의 도록들과 판매 관련 목록들은 현재 구입경위가 불투명한 일본 등지의 반출품 환수를 위한 소중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게 주씨의 설명이다.

1938년 야마나카 상회가 주최한 ‘세계고미술즉매회대전관’ 도록에 나온 조선의 옛 석탑. 무단반출된 것이 분명한 이 석탑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1938년 야마나카 상회가 주최한 ‘세계고미술즉매회대전관’ 도록에 나온 조선의 옛 석탑. 무단반출된 것이 분명한 이 석탑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야마나카 상회는 세키노 다다시, 우메하라 스에지, 하마다 고사쿠 등 초창기 국내 고고발굴사를 닦은 일본 관학자들의 협조로 막대한 분량의 조선 석물과 도자기를 반출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1945년 일제 패망 뒤 다수의 국외자산을 몰수당하고 해체됐다. 야마나카 상회는 1936년 간송컬렉션의 최고 명품 중 하나가 된 ‘청화백자 철사진사 국화문병’(국보)을 입수하기 위해 간송 전형필과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혜원 신윤복의 유명한 풍속도첩 또한 오사카를 찾아온 간송에게 판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간송은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현재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뜨락에 있는 통일신라·고려시대의 3층 석탑 2기, 석조사자상, 석등을 거액을 주고 환수하기도 했다.

1934년 ‘지나조선고미술전관’에 나온 새와 매화 무늬가 그려진 조선시대의 백자진사술병. 당시 전시에서 중요 명품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일본의 한국도자기 수집가 아카보시 고로가 1965년까지 소장했다는 사실이 그의 책에 실린 도판을 통해 확인되지만, 그뒤 소장처는 안개에 싸여 있다.
1934년 ‘지나조선고미술전관’에 나온 새와 매화 무늬가 그려진 조선시대의 백자진사술병. 당시 전시에서 중요 명품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일본의 한국도자기 수집가 아카보시 고로가 1965년까지 소장했다는 사실이 그의 책에 실린 도판을 통해 확인되지만, 그뒤 소장처는 안개에 싸여 있다.
최근에는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허미티지 박물관에서 환수해 온 불화 <석가삼존도>가 야마나카 상회가 반출한 작품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학고재화랑이 일본 규슈 사가현의 수장가가 소유한 정원에서 발견해 사들여온 고려초기 3층 석탑도 애초 야마나카 상회가 팔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학계에서는 야마나카 상회의 조선문화재 유출 경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씨는 “야마나카 상회가 한국 문화재 유출에 숱하게 관여했다는 말들이 돌았지만, 어떤 문화재를 사고 팔고 빼돌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와 기록들이 국내 논문을 통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논문에서 밝힌 반출품의 정보, 이미지들과 일본에 산재한 사설미술관 등의 석물 컬렉션과의 지속적인 비교조사를 벌여 환수 작업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38년 야마나카 상회가 대규모 판매전으로 마련한 ‘세계고미술즉매회대전관’의 포스터 중 일부분. 왼쪽 부분에 조선에서 반출한 석등, 석양 등의 석물을 그려넣고 그 옆에 조선석등 50점이 나왔다고 적어놓았다.
1938년 야마나카 상회가 대규모 판매전으로 마련한 ‘세계고미술즉매회대전관’의 포스터 중 일부분. 왼쪽 부분에 조선에서 반출한 석등, 석양 등의 석물을 그려넣고 그 옆에 조선석등 50점이 나왔다고 적어놓았다.
논문에서 야마나카 상회가 작성한 도록, 목록에 실린 조선 석물 실물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소장품들과의 비교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일본 각지의 미술관, 박물관은 10곳이 넘는다. 석조물의 경우 도쿄국립박물관,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 교토 고려미술관, 도쿄 네즈미술관, 시즈오카현 사노미술관, 도치기현 구리다미술관,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등이 소장품 입수경위를 상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는 곳으로 지목된다. 도자기 류는 도쿄 이데미츠미술관, 야마가타현의 기쿠스이공예관과 데와자쿠라미술관, 와코대학 데라카도 고와자료실 등의 수장품들을 조사해야할 대상으로 적시해놓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주홍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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