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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증도가자 7년 논란 종지부…문화재 지정 좌절

등록 2017-04-13 15:11수정 2017-04-14 02:19

문화재위 “‘증도가’ 인쇄 활자로 보기 어렵다”
고려시대 제작 가능성…재심 여지는 좁아
증도가자의 일부. 고미술상 김종춘씨의 소장품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증도가자의 일부. 고미술상 김종춘씨의 소장품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가 정말 맞나? 지난 7년간 문화재 동네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고려 금속활자 실체 공방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일명 ‘증도가자’로 불린 옛 금속활자들의 국가문화재 지정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13일 오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위원들이 ‘증도가자’의 국가보물 지정신청 건을 이날 최종심의한 끝에 부결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증도가자는 고미술상 김종춘씨가 소장해온 시대·출처 미상의 옛 금속활자 컬렉션이다. 13세기 초 고려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를 인쇄할 때 이 활자들을 썼다는 주장이 나와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김씨가 2010년 9월 남권희 경북대 교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며 이 컬렉션을 처음 공개한 뒤부터 학계에서는 진위 등에 얽힌 열띤 논란이 이어져왔다.

문화재청이 이날 공개한 심의자료에서 문화재위원들은 “지정 신청된 활자는 서체 비교, 주조 및 조판 등에 대한 과학적 조사 결과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부결 사유를 밝혔다. 다만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등을 통해 고려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추정할 수 있으나,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해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는 전제를 덧붙였다. 한마디로 현재 증도가자는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미지의 유물’이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소유자 김씨와 남 교수는 금속활자로 찍은 원본 <증도가>(현재는 전하지 않는다)를 1239년 목판으로 바꿔 찍은 현존 서적 <증도가> 번각본(보물)과 증도가자를 대조해보니 서체가 흡사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으면서,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설이 입증되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고려 서적 <직지심체요절>(1377년·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소장)의 활자보다 증도가자가 최소한 138년 이른 유물이 된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최종심의에서 김씨와 남 교수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번각본 <증도가>에 나온 목활자체와 증도가자 활자들을 맞춰보니 실상은 크게 달랐다. 글자들의 일치도가, 별도로 비교한 조선시대 활자본 임진자보다도 떨어지며 번각본 서체보다 더 큰 증도가자 활자들도 나타나 <증도가>를 찍은 활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 활자성분 분석 결과 출토 당시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의문이 있고, 보존환경의 신뢰성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이었다.

출처와 유통경로가 불명확한 점도 유력한 근거가 됐다. 소유자 김씨는 애초 증도가자를 일본에서 입수했다고 밝혔지만, 고미술업계에서는 중국 제작설 등이 떠돌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유통경로도 일본 수장가로부터 초두, 청동수반 등 다른 유물들 안에 엉겨붙은 일부 활자들과 함께 증도가자를 입수했다는 1차 구입자 증언과 달리 그 뒤 사들인 다른 구입자는 이를 부인해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증도가자(고려 금속활자) 보물 지정 신청을 부결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문화재위원회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증도가자(고려 금속활자) 보물 지정 신청을 부결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문화재위원들은 증도가자가 고려 금속활자일 수는 있다며 확실한 새 증거가 제시될 경우 재심할 여지는 남겨뒀다. 이는 진위 공방의 또 다른 관건이던, 활자에 묻은 먹의 방사성 탄소연대 분석 결과를 고려한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등 연구기관들이 2011년부터 수년간 먹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상당 부분 고려시대 측정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쪽은 “현재 학계에서 고려금속활자로 확실하게 인정된 기준 유물이 전무하고, 증도가자에 묻은 먹의 양이 너무 적어 새롭게 연대조사를 할 수 없는 실정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능한 과학기술로 남아 있는 모든 자료를 검토한 최선의 결과”라는 문화재위원 흥선 스님의 말대로, 재심이 수용될 공산은 희박해 보인다. 위원회 쪽이 내건 재심의 전제조건들은 까다롭다. 지난해 북한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에 대한 새 분석자료와 증도가자 취득 경위에 대한 이해할 만한 해명자료, 증도가자와 함께 입수된 유물로 전해졌으나 지금은 소장처가 묘연한 초두, 청동수반 등이 제출돼야 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런 조건들은 현재 상황에서 충족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소유자 김씨는 이미 2011년 증도가자를 국가보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으나 증도가자 활자로 찍은 원본이 전하지 않은 탓에 활자 입수 경위, 제작지 등을 놓고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남 교수는 논란의 당사자인데도 2014년 문화재청 증도가자 관련 용역 조사까지 맡으며 김씨가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점이 모두 증도가자 또는 고려시대 활자라는 결론을 내려 불공정 시비도 불거졌다. 논란이 심화되자, 문화재위는 2015년 6월 ‘고려 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을 꾸리기로 결정했고, 이후 2년간의 전방위적인 조사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부적격’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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