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금동신발 안에 파리 번데기 껍질이…

나주 정촌고분 출토품에서 번데기 껍질 10개 발견
주검 일정기간 바깥에 놓아둔 ‘빈장’ 흔적 추정
연구소 “최소 6일 이상 무덤 밖에서 장례 의식 치른 듯”

정촌 고분의 금동신발 출토품 안에서 나온 1500여년전의 파리 번데기 껍질. 무덤주인을 바로 묻지 않고 바깥에 일정기간 놓아둔 고대 특유의 장법인 ‘빈장’을 입증하는 증거로 추정된다.

1500여년 묵은 화려한 금동신발 안에 왜 파리 번데기가 들어있었을까.

2015년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될 당시 용머리 달린 디자인이 확인돼 눈길을 모았던 1500여년 전 백제 금동신발. 이 신발 안에서 당시 서식하던 파리의 번데기 껍질이 생생한 모습으로 발견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안의 흙을 털어내다 무덤 주인의 발뒤꿈치 뼛조각들과 함께 파리 번데기 껍질 10여개를 찾아냈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 쪽은 주검 주변의 곤충 유체를 통해 묻힌 이의 사망 시각과 정황 등을 파악하는 법의곤충학을 활용해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리 번데기 껍질이 국내 무덤 속 고대 인골이나 매장 유물에서 발견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고대인이 장례 때 주검을 곧장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장례의식을 치르며 관 바깥에 임시로 주검을 놓아두는 장법인 ‘빈장’(殯葬) 흔적일 가능성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보는 데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사람의 주검이나 동물의 사체는 바로 묻지 않으면 불과 몇 시간 만에 파리떼가 꼬여든다. 파리 번데기 껍질은 파리가 주검에 모여들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무덤에 묻히지 않고 오랫동안 외부에 주검이 안치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흔적이라는 게 연구소 쪽 설명이다.

이는 연구소가 벌인 법의곤충학적 분석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연구소 쪽은 정촌고분 1호 돌방과 같은 조건으로 빛을 차단하고, 평균온도 16도, 습도 90%의 환경을 실험적으로 만들어 파리의 생태 변화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알이나 구더기는 성충이 되기 전에 죽고, 번데기일 때만 성충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동호 학예연구관은 “시신이 매장되기 전 번데기가 금동신발에 서식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파리가 알에서 번데기가 되기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인 6.5일 동안은 적어도 주검이 묻히지 않고 지금의 3일장이나 5일장처럼 외부에서 장례 의례를 하며 노출됐을 것으로 본다”고 추정했다.

정촌고분에서 나온 고대인의 뼈(인골).

번데기를 남긴 고대의 파리는 지금도 정촌고분 주변에 서식하는 ‘검정뺨금파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연구소에 따르면, 검정뺨금파리는 주로 4월부터 11월까지 활동한다. 이에 따라 정촌고분 1호분의 무덤주인도 이 시기에 숨졌을 것으로 보이며, 고분 주변의 기후 변화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정촌고분은 한 변의 길이가 약 30m, 높이가 9m인 5세기 후반 무덤이며 무덤의 중심부에서 금동신발이 출토된 1호분이 확인됐다. 무덤의 실체를 놓고 백제에 복속된 마한설, 마한 독자세력설 등 학설이 엇갈린다. 발굴 당시 돌방(석실) 3기와 돌널(석곽) 4기, 독널(옹관) 6기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연구소 쪽은 파리 번데기 껍질과 함께 출토된 옛 인골을 분석해 무덤 주인의 사망 원인과 연령, 식습관, 신체 크기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e-mail], 사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