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에서 확인된 석성의 모습.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치밀하게 벽돌을 쌓아올린 얼개를 하고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때 장군 권율의 전승지였던 경기도 한강변 행주산성이 고대에도 중요한 군사요새 구실을 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에 돌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석성(石城:돌성곽)의 자취가 최근 발견된 것이다.
유적을 관할하는 고양시는 올해 2월말부터 고양시 행주내동 산성 꼭대기 부근을 발굴조사한 결과 높이 3m 정도의 석성 터와 삼국~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조각, 철기류 수십점을 찾아냈다고 20일 발표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벌인 이번 조사는 산성 종합정비에 앞선 지표조사·시굴조사 성격으로, 산성 정상부 20m 아래 남서쪽 경사면에서 진행됐다.
자취를 드러낸 석성은 몸통에 해당하는 체성벽을 보강한 보축벽이 먼저 드러났고, 체성벽은 나중에 확인됐다. 성벽은 돌과 돌 사이에 진흙을 발라 상당부분 이음새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 양호하게 보존된 것이 특징이다. 또, 줄·격자무늬 등이 새겨진 기왓장들과 화살촉, 수레바퀴 부속품 등도 함께 나와 공방이 있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해졌다. 기와조각들 중 일부에서는 행주산성의 첫 글자 ‘행(幸)’이 새겨진 모습도 보인다. 행주산성 일대의 성곽을 쌓은 내력과 전체적인 형태, 규모가 아직 온전히 확인되지 않은 만큼, 전혀 몰랐던 고대 돌성곽의 자취를 찾아낸 것은 의미가 크다는 게 연구소 쪽의 설명이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해전, 진주성싸움과 더불어 3대첩으로 꼽히는 역사적 승전의 현장이다. 부녀자들이 치마폭에 돌을 싸와 던지는 투석전으로 왜군을 무찔러 ‘행주치마’가 유래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역사고고학계에서는 이곳이 한강하구와 접하고, 성터가 있는 덕양산 한쪽 면이 절벽으로 이뤄진 천혜의 요새 지형을 갖춰 고대부터 삼국 사이에 숱한 각축이 빚어진 군사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1990년대 서울대 박물관은 산 중턱 부근을 발굴조사해 400여m의 토성과 문터 등을 확인하고 성 일부를 복원하기도 했다. 고양시 쪽은 석성을 쌓은 시기와 기법, 규모 등을 밝히기 위한 전면 발굴을 추진할 방침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