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포좌에서 발견된 서양식 대포 ‘불랑기’.
300여년 전 서해 강화도 요새를 지켰던 대포인 ‘불랑기(佛狼機)’가 세상에 다시 나왔다. 강화군과 인천시립박물관은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건평돈대(인천광역시 기념물)를 최근 발굴조사한 결과 불랑기의 포신인 모포(母砲) 1문을 찾아냈다고 25일 발표했다.
출토된 불랑기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하나다. 포신 앞쪽에 뚫린 포문에 포탄과 화약을 집어넣어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근현대 화포처럼 포신 뒤쪽 장치에 장전을 하는 얼개를 띠고있다. 포신인 모포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어 있고,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한 뒤 불씨를 붙여 포탄을 쏘았다.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한 묶음을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속발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건평돈대의 불랑기는 실전 배치 장소에서 처음으로 확인됐고, 도읍 방어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로 꼽힌 강화도에서 처음 출토된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포신에 새긴 명문에는 ‘1680년(숙종 6년)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흘 등이 강도(강화도)돈대에서 쓸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가 100근’이라는 내용과 함께 제작 기관, 감독 관리, 장인들 이름이 상세히 기록돼 조선시대 무기사와 국방 체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불랑기 유물들은 2009년 서울시청 신청사 공사현장(옛 군기시 터)에서 출토된 불랑기 자포(子砲) 1점(보물·1563년 제작)을 빼면,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돈대는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인 강화도에 외적이 침입해 상륙하는 것을 막고 근해의 군사적 움직임을 살펴보기 위해 쌓은 요새형 시설이다. 1679년(숙종 5년)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를 쌓았고, 그뒤 6개를 더 지어 모두 54곳에 이른다. 박물관 쪽은 “조선 중기 문신 이형상(1653~1733)이 지은 <강도지(江都誌)>를 보면, 강화도 각 돈대에는 대포를 놓는 포좌를 2~4개 짓고, 불랑기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며 “이번 발굴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됐다”고 설명했다. 강화군은 26일 오후 2시 불랑기가 나온 건평돈대 발굴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인천시립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