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고려총독부’ 설치안을 추진했던 초대 만철 총재 고토 신페이.
일제가 1910년 한일병합 당시 평양에 ‘고려총독부’란 이름의 통치거점을 설치하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이노우에 나오키 일본 교토부립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계명대 인문학연구소 학술대회에서 한 ‘고구려와 만선사’란 기조강연을 통해 공개됐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고려총독부 논의의 비화를 담은 일제강점기 책 <고토 신페이 백작과 만주역사조사부>(1939년. 만철 철도총국 광보과 펴냄)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이 책에,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 일본이 만든 남만주철도회사(만철)의 초대 총재 고토 신페이(1857~1929)와 1908~1915년 운영된 만철 산하 역사조사부의 학자들, 만주 주둔 일본군 장성들이 평양에 고려총독부 설치를 추진한 내용이 나온다고 밝혔다.
강연 내용을 보면, 책에서 평양에 조선통치의 거점인 고려총독부 신설안을 입안한 주역은 고토 신페이 만철 총재다. 만철은 1945년 패망 때까지 만주와 조선 침탈정책의 첨병에 섰던 국책회사로, 일본 정재계에서 영향력이 막대했던 권력집단이다. 일본 정계의 거물이었던 고토는 당시 일본 국무회의에 고려총독부 설치를 건의하면서 “만주와 조선은 통합적으로 경영해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적합한 조선 통치의 거점은 남쪽에 치우친 경성이 아닌 평양에 두어야 하며, 총독부 명칭도 퇴락한 조선을 붙이지 말고 조선 민중이 좋아하며 세계에 ‘코리아’로 알려진 고려란 말을 써야한다”는 명분을 댔다. 그뿐 아니라 러일전쟁 당시 만주 주둔 일본군 총참모장이던 고다마 겐타로도 비슷한 견해를 초대 조선 총독이자 훗날 일본 수상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게 편지로 보냈다고 증언했다.
평양 고려총독부 설치론은 당시 만철 역사조사부에서 활동하던 시라토리 구라키치, 이나바 이와이치 같은 식민사학자들이 만선사(만주조선사)의 맥락에서 요동과 한반도를 지배한 유일한 옛 국가였던 고구려의 역사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조선과 만주는 하나라는 ‘만선사관’이 정치적 배경으로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경성 설치안을 밀고나가 좌절됐다는 게 이노우에 교수의 설명이다. 고토와 고다마의 논문을 살펴본 이상훈 경북대 연구교수(전쟁사)는 “고려총독부 설치를 일본 정부가 논의했다는 사실은 국내 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강점 초창기부터 만선사관이 조선통치전략의 배경으로 대두됐다는 점을 보여줘 주목된다”고 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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