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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선생님 연극 ‘노동의 새벽’ 첫 장면은 얼마나 신났던지요”

등록 2017-05-04 18:11수정 2017-05-07 02:38

【가신이의 발자취】 연극연출가 박인배 선생 영전에
고 박인배 문화운동가.
고 박인배 문화운동가.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나는 연극으로 먼저 봤다. 1988년 신촌 예술극장 한마당에 오른 노래극 <노동의 새벽>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포장마차에 들어선 노동자 아저씨들이 술잔을 들고 “모래에 싹이 텄나 사장이 애를 뱄나 이 좋은 토요일 잔업이 없단다”(‘포장마차’) 노래를 부르던 왁자한 첫 장면은 덩달아 신나고, 격한 부부싸움 끝에 머쓱해진 분위기가 아내의 수줍던 처녀 시절을 회상하는 ‘남성편력기’로 이어지던 장면은 또 얼마나 예뻤던가. 박노해의 시에 노래를 붙이고 장면을 구성해서 만든 연극은 파업, 해고, 수배로 이어지는 노동운동의 절박한 이야기였지만, 평범한 대학생인 나는 저렇게 노동자로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인배 선생님이 지난 3일 오전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항년 64. 연극연출가이자 문화운동가로, 또 정책가로 전방위적 활동을 해온 박 선생님은 내가 처음 본 노동연극인 <노동의 새벽> 연출가이다. 내가 본 공연은 이 작품의 초연이었는데, 선생님의 대표작이자 노동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것이 인연이었을까. 그 후 때로는 글로 배워야 하는 마당극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로, 때로는 비평의 대상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때로는 동료로서 선생님과 함께 토론하고, 보고서를 쓰고,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내가 함께했던 이런 일들은 그의 전방위적 활동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박 선생님의 70~80년대 작업들은 지금도 마당극의 대표적 작품으로 기록되고 연구되고 있다. <진동아굿>은 1974년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사건일지를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사건의 재현과 증언만이 아니라 관객들이 사건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역동적인 구조가 돋보인다. 90년대 들어서는 노래판굿 <꽃다지> 연작과 같은 대규모 집회형 공연들을 제작 연출했다. 이러한 작품들이 집회라는 정치적 행위를 문화라는 껍질(형식)로 감싼 것으로 쉽게 이해되지만, 소극장 연극이건 대규모 집회형 공연이건 선생님의 작업들은 정치적 이슈를 반복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감수성을 포착하는 예민함이 예술가의 예지에 갇히지 않고 관객과 함께 역동적인 현장예술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많은 작품들이 뜨거운 시절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00년대의 활동은 문화정책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책가이자 이론가로서 선생님의 활동은 이미 70년대 마당극운동에서 시작하여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서울노동자문화운동협의회 등으로 이어져왔다. 선생님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하는 문화운동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을 바탕으로 문화정책의 새로운 개념을 공적 제도에 기입하고자 했다. 그저 내가 직접 지켜보았던 순간들만으로도 창작과 그것이 출발하고 완성되는 현실의 맥락을 함께 고민하면서 이 모두를 아우르며 제도라는 환경을 재구조화하는 여러 겹의 작업과 활동이 한 사람의 삶에서 소용돌이쳤다.

한 사람의 자리는 그 사람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나는 것일까. 빈소에서 오랜만에 해후하는 우리는 각자가 선 자리의 거리만큼이나 선생님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과 함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부디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기를. 선생님의 동지이자 사랑, 이영미 선생님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김소연/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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