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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선생은 전통적 선비인 동시에 근대적 지식인”

등록 2017-05-14 18:32수정 2017-05-14 20:09

한국사와 문학, 사상사 등
문사철 아우르는 학술 업적
독재 비판 등 지식인 사명 투철
삶과 학문 열쇳말은 ‘주체’
이우성 선생을 떠나보내며

벽사 이우성(사진) 선생은 일생을 단 한순간도 다른 길로 나간 일 없이, 학자로서 올곧게 살아온 분입니다. 선생의 존재감은 오로지 선생 자신의 학자적 성격과 학적인 성취로 이루어졌음이 물론입니다.

선생은 한문으로 시를 짓고 산문을 구사하는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총 8책으로 엮인 선생의 저작집에서 <벽사관문존>(碧史館文存) 상하 2책이 증명하는 바입니다. 근대 학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생 특유의 역량이지요. 이는 선생의 학자적 성장 과정에서 배양된 것입니다. 선생은 근대적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가정에서 어른들의 각별한 관심으로 ‘독선생’의 훈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선생은 전통적인 한학자라기보다는 근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선생은 우리의 역사학을 근대학문으로 방향을 세우는 데 이론적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고려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학적 추구는 역사학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문학 분야에서는 발표 논문이 많지 않아도 편편이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니와, 사상사 분야에 깊이 유의하여 이 방면을 새롭게 개척했습니다. 문·사·철이 선생의 학문 작업에서 하나로 통합을 이루고 있지요. 학적 생애의 후반기에 집중한 실학 연구는 문·사·철의 총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벽사의 학문세계에서 구현된 문·사·철의 총체는 전통 한문교양의 기반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거기에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아 각성이 따릅니다. 양자는 서로 다른 것처럼 비치지만 선생에겐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정신 활동에서 전근대와 근대는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고 근대와 전근대가 창조적으로 결합된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선생은 전통적인 선비인 동시에 근대적 지식인입니다.

선생은 근대 지성인으로서의 사명감을 투철히 자각한 인생행로를 걸으셨습니다. 4·19 직후 부산의 한 대학에서 학원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이유로 쫓겨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1980년에는 신군부 등장을 앞두고 ‘361 교수 성명’을 주도한 까닭에 구금, 해직되는 고초를 겪습니다. 이 기간에 전두환 군부정권은 선생을 협박하고 회유하는 술책을 썼으나 지식인으로서의 자세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학자로서 상아탑을 고수하는 한편 거기에 스스로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시대 현실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사회참여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사회참여는 학자로서의 입장을 지키는 선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삶과 학문에서 열쇳말은 ‘주체’라는 두 글자입니다. 분단 상황에서 민족주체를 중시했으며, 그것이 학문의 논리로 관철됩니다. 그리하여 학문하는 ‘나’의 주체가 역사의 주체로 통일되어야 함을 확고히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선생은 분단의 민족 현실과 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정치 현실에 항시 고민하며 때로는 허탈감을 토로했습니다. 그렇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진취적인 자세로 실천의 방도를 사고하였는데 노경에 이르러 노력을 기울이신 일은 후진 양성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성립된 것이 ‘실시학사’입니다. ‘실시’는 실사구시의 준말입니다. 실사구시는 선생에 있어서 학문의 방법론이자 사회적 실천의 방법론입니다. 흔히 인생은 무상하다고들 합니다만, 오히려 지금 선생의 존재감이 더욱 크고 중요함을 절감합니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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