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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촛불혁명’ 이후 ‘대표’의 문제를 고민하는 정치철학

등록 2017-05-15 15:53수정 2017-05-15 20:18

12~14일 제8회 맑스코뮤날레 열려
현대정치철학연구회, ‘주권과 민주주의’ 세션
‘을의 민주주의’(진태원), ‘대표’(홍철기) 개념 논의
19대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촛불집회인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23차 범국민행동의 날'이 4월2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9대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촛불집회인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23차 범국민행동의 날'이 4월2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 최대의 좌파 학술문화행사인 제8회 ‘맑스코뮤날레’가 12~14일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혁명과 이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올해가 ‘촛불혁명’의 원년인데다가 러시아혁명 100년, 6·10민주항쟁 30년 등 굵직한 혁명적 사건들을 기념하는 해인 것을 반영했다. 메인세션의 발표들만 따로 모아 단행본 <혁명과 이행-러시아혁명의 현재성과 21세기 이행기의 새로운 혁명 전략>(한울)도 펴냈다.

제8회 맑스코뮤날레 메인세션 발표들을 단행본으로 묶어 펴낸 <혁명과 이행>.
제8회 맑스코뮤날레 메인세션 발표들을 단행본으로 묶어 펴낸 <혁명과 이행>.
현대정치철학연구회는 12일 ‘주권과 민주주의’란 제목의 세션을 열었다. 이 세션에서는 주로 ‘대표’의 문제 등 ‘촛불혁명’이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라는 결과물을 낳은 현재, 우리 현실을 톺아볼 수 있는 고민들이 논의됐다.

첫 발표를 맡은 진태원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원)는 <황해문화> 89호 기고에서 제기한 바 있는 ‘을의 민주주의’ 화두를 좀 더 벼려서 내놨다. 비정규직 노동자, 프랜차이즈 가맹점 아르바이트 등 우리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을’은 ‘갑을관계’에서 나온 말인데, 진 교수는 이것이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몫 없는 이들’(정치에서 배제된 이들)과 가까운 개념이라 보고 ‘을’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가 가능한지 모색한다.

진 교수는 링컨의 경구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민주주의’를 ‘을을 위한, 을에 의한, 을의 민주주의’로 재해석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의 위협에서 ‘을’을 보호·배려하는 것은 ‘을을 위한 민주주의’가, ‘을’의 목소리와 의지가 잘 ‘대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을에 의한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진 교수는 ‘대표’ 개념을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해 이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풀었다. ‘재-현’의 대상으로 ‘을’을 고민하면, 결국 ‘을’이 어떤 정치적 주체냐고 묻는 ‘을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진 교수는 “기존 권력이 ‘국민’ 대신 ‘을’을 주권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을의 민주주의’의 목표”라고 제시했다. 다만 ‘을’은 항상 ‘병’이나 ‘정’ 등 또다른 위계 관계를 내포하는 등 이미 그 내부가 동질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복수적이란 측면에서 계급, 민중, 소수자 등의 주체 개념과 구분된다. “때론 ‘을’이 ‘갑’이 되고 ‘갑’이 ‘을’이 되는 등 고정되어 있지 않은 관계성”이 핵심이다. 때문에 ‘을’이 내포하고 있는 내적 차이와 위계 관계를 어떻게 해체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지가 ‘을의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

또다른 발표자 홍철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역시 ‘대표’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동안 ‘대표’라는 말은 ‘대의제’와 엮여서 직접·참여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홍 연구원은 이 단어를 언어적·개념적으로만 살펴보면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사물이나 사람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만든다”(‘재-현’)는 뜻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곧 ‘간접 대 직접’ 등 양극화된 생각이나 ‘선거적인 대표’에 붙들리지 않으면, ‘대표’(‘재-현’)란 말로부터 더 많은 정치철학적 자원을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통령 후보가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했을 때, 이에 대한 항의에 나선 사람들은 선거로만 환원되지 않는 ‘재-’현’으로서의 ‘대표’를 보여준 셈이다. 홍 연구원은 “‘한 가지 방식(선거)으로만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극복하면, 당사자(정치적 주체)를 구성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발견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철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본인 제공
홍철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본인 제공
전반적으로 ‘촛불혁명’ 뒤 대통령 선거라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지나온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스몄다. 진 교수는 지난해 수많은 ‘을’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지만 점차 운동의 동력이 약화됐고, 결국 선거라는 “제도의 시간”이 찾아온 현상을 고민해봐야 할 대목으로 짚었다. “주권자가 사실은 주권자로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과연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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