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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신라시대 인신제의 흔적…누워있는 사람 뼈 발견됐다

등록 2017-05-16 17:49수정 2017-05-16 20:04

경주 월성 성벽 토층 발굴현장서
성인 인골 2구, 곰뼈, 토기 등 출토
성벽 착공시 인신제의 첫 사례

성곽 외부 연못서 발견된 목간에 쓰인 이두
고대어 연구 재론 여지 열어
터번 쓴 토우는 6세기께 제작 추정
월성 서성벽 에이(A)지구에서 인골이 출토되는 장면.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국내 사례는 월성이 처음이다.
월성 서성벽 에이(A)지구에서 인골이 출토되는 장면.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국내 사례는 월성이 처음이다.
천년 신라궁터인 경북 경주 월성 성벽 안에 인골들이 박혀 있었다. 성벽 토층 속에 신라인 2명이 누운 자세 그대로 유골이 되어 묻힌 것이다. 이른바 ‘인신제의’(人身祭儀)의 자취다. 성, 제방, 궁궐을 지을 때 안전을 기원하려고 사람을 제물로 바친 풍속의 구체적 증거가 드러난 셈이다.

2015년부터 월성을 발굴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6일 현장설명회를 열어, 최근 성곽 단면을 잘라 조사하던 중 서쪽 성벽 바닥의 토층 속에서 성인 유골 2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한 구는 똑바로 누웠고 다른 한 구는 반대쪽 인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얼굴과 한쪽 팔이 약간 돌려져 있는 모습으로 묻혔다. 166㎝의 한 구는 남자이고, 키 159㎝의 다른 한 구는 성별이 가려지지 않았다. 두 구 모두 얼굴 주변에서 예식의 흔적인 나무껍질(수피)로 싼 흔적이 나타났고, 성벽 바닥 부분 토층 안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흔적이 보인다. 연구소 쪽은 성벽을 쌓을 때 행한 인신제의의 국내 첫 사례라고 했다.

16일 오전 열린 월성 발굴 설명회 현장. 성벽 내부의 인골 발굴 지점에서 이인숙 학예사가 실물 크기의 인신제의 인골 사진을 깔아놓고 설명하고 있다. 인골은 발굴 직후 보존처리를 위해 수습된 상태다.
16일 오전 열린 월성 발굴 설명회 현장. 성벽 내부의 인골 발굴 지점에서 이인숙 학예사가 실물 크기의 인신제의 인골 사진을 깔아놓고 설명하고 있다. 인골은 발굴 직후 보존처리를 위해 수습된 상태다.
주거지 또는 성벽의 축조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쓴 풍습은 고대 중국의 상나라(은나라)에서 성행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도 죽은 사람을 묻어 땅기운을 다스리려는 인신제의의 흔적들은 몇 차례 나왔었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신관 공사터를 조사하다 드러난 9세기 통일신라 우물 속에서는 어린아이 유골이 소·말·개 등의 뼈, 제기들과 함께 발견됐다. 월성 해자(연못)와 전북 김제 벽골제에서도 과거 조사 당시 인골이 나온 바 있다. 권력자가 죽으면 아랫사람들도 함께 묻는 순장도 인신제의의 범주에 들어간다. 몇년 전 생전 형상까지 복원한 경남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의 순장 소녀,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무더기 순장 등이 알려져 있다.

월성 성벽에서 나온 인골은 인신공양 제의의 실체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 유물로 평가된다. 인골 옆에서 제례용 토기들이 나왔고, 성 바깥 해자에서는 경주 지역에 살지 않는 시베리아 원산의 곰뼈들이 출토된 점 등으로 볼 때 성을 쌓을 때 다양한 제례의식이 펼쳐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처음 발굴된 터번 쓴 서역인 모양의 토우상. 소그드인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처음 발굴된 터번 쓴 서역인 모양의 토우상. 소그드인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 바깥의 해자에서 터번을 쓴 서역인 토우와, 삼국시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이 나온 것도 획기적 성과다. 터번 쓴 토우는 서역 소그드인 상으로 보고 있다. 끝자락이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둘렀으며, 팔 부분이 소매가 좁은 카프탄 복식을 입었다. 잘록한 허리에 몸 윤곽선이 드러나는 카프탄 복식은 7~10세기 당나라에서 호복이라고 불렀던 소그드인 옷과 유사하다. 6세기께 상으로 국내 출토된 서역인 추정 토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한다.

월성 현장에서 공개된 해자 출토 목간. 6세기 때 것으로 병오(丙午)년이란 연대명이 적혀 있다. 국내 출토 목간들 가운데 정확한 연대명이 처음 확인된 것으로, 법흥왕 13년(526년)이나 진평왕 8년(586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흥왕 때 쓰인 목간일 경우 삼국시대 최고의 목간이 된다.
월성 현장에서 공개된 해자 출토 목간. 6세기 때 것으로 병오(丙午)년이란 연대명이 적혀 있다. 국내 출토 목간들 가운데 정확한 연대명이 처음 확인된 것으로, 법흥왕 13년(526년)이나 진평왕 8년(586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법흥왕 때 쓰인 목간일 경우 삼국시대 최고의 목간이 된다.
완형 목간의 경우 ‘병오년’(丙午年) 연대명이 처음 확인되는데, 뒤이어 당대 신라 관리의 이름인 ‘일벌’(一伐), ‘간지’(干支) 등이 일감을 받은 내력을 적어놓았다. 학계는 내용 중 ‘간지’ 관등명을 주시하고 있다.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561년 관등제를 정비할 당시 이 명칭을 없애고 이후 간(干)으로 축약시켜 사용했으므로 6세기 초반에만 쓴 관직명으로 보는 게 통설이기 때문이다. 목간의 병오년은 진흥왕의 선왕인 법흥왕 13년(526년) 또는 후대인 진평왕 8년(586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6세기 초 ‘간지’ 관등명이 적혀 있어 법흥왕 때 목간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경우 지금껏 출토된 삼국시대 목간들 가운데 가장 이른 유물이 된다.

‘아뢰옵고’라는 뜻의 이두식 문구 ‘백견’(白遣)이 다른 출토 목간에 보이는 것도 주목된다. 이두에서 이런 연결형 어미 용법은 8세기 이후 나타난다고 학계는 생각해왔으나, 삼국통일 이전인 6세기 고신라 때부터 고도의 이두 활용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 밝혀져 재론이 불가피해졌다. 곡식 등의 출납 수량을 적은 목간에서는 완두콩을 ‘안두’(安豆)라고 읽는 특유의 표기 방식이 확인됐다. 몰랐던 관직명인 ‘전중대등’(典中大等), 주나라 주공을 모방한 듯한 ‘주공지’(周公智) 등의 낯선 인명도 나타났다.

경북 경주 월성 발굴현장.
경북 경주 월성 발굴현장.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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