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운데)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새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이 23일 개막했다. 10개국 13명의 외국 작가와 50여명의 국내 작가가 참석해, 25일까지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주제로 의견을 나눈다.
포럼 참석차 방한한 프랑스 문학 거장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는 최근 서울을 배경으로 한 <하늘 아래 빛나>(Bitna under the Sky·가제)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다는 소식이 알려져 큰 관심을 끌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르 클레지오는 이화여대에서 1년 동안 초빙교수로 머무는 등 한국과 한국 문학에 애정이 많은 작가로 꼽힌다.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집필중인 소설이 “한 젊은 여성이 전신이 마비된 또 다른 젊은 여성에게, 자신이 서울에서 본 것들을 상상력을 가미해 이야기해주는 내용의 중편”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탈고 예정이며, 올 여름이 끝나기 전에 미국·프랑스·한국에서 출간할 계획이다. 그리스 작가 라프카디오 헌이 일본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 <괴담>처럼, 서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선녀 등을 통해 서울이란 공간에 담긴 감정들을 풀어낼 것이라 했다.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새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로 르 클레지오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은 다채로운 이야기와 신화가 창조되는 ‘다층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고, 여기저기서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는 등 풍부한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타지가 넘치고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은 바로 문학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은 ‘문학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과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촛불혁명’과 대통령 탄핵, 정권교체의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르 클레지오는 촛불시위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밤중에 빛나는 빛들을 통해 ‘바꿔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세계 정치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유럽에서는 오래된 정치에 많은 시민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고, 인종차별 등 민족주의의 나쁜 단점들이 ‘포퓰리즘’으로 드러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젊은 정신’이 발휘되어 민중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열망을 드러냈다. 이것은 ‘포퓰리즘’과 다르다”고 밝혔다.
르 클레지오는 25일 “우리 시대 문학의 위대한 특성은 국경의 한계를 넘어 문학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란 내용으로 기조강연에 나선다.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인공지능과 인터넷 시대에도 문학은 인간의 지능에 기대어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문학을 위협하는 것은 ‘민족주의’(자민족 중심주의)다. 문학은 타자를 사랑하고 타자의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는 것으로, 늘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 역사를 보면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했을 수도 있을텐데, 김애란·한강 등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유머가 넘치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한편 외부의 영향도 받아들이는 등 ‘보편적인 요소’로 문학을 한다. 한국의 젊은 문학은 민족주의의 위협을 극복했다”고도 평가했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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