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부를 자임했던 박근혜 정권의 ‘문화융성’ 정책이 사실상 블랙리스트를 통한 문화파시즘 통치와 최순실 게이트로 대표되는 국가재정 절취 시스템에 불과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한국의 문화예술 영역은 한 나라의 문화적 격조를 현현하는 영역에서 국가권력의 야만적 농단의 유희장으로 일거에 그 위상이 추락해 버렸다. 문화적 격조와는 애초에 관련이 희박한 연이은 보수 ‘도둑정권’들과의 단호한 결별과 그 적폐의 청산을 제일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 새 정부가 이전 정권들과는 차별화된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걸맞은 문화예술정책을 수립하는 데 꼭 참조해야 할 몇 가지 전제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 19대 대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은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다양한 정책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는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대책에서부터 창작 및 표현의 자유 보장, 문화예술인의 기본권과 복지 보장, 문화예술 생태계 환경 개선, 생활 및 지역문화 활성화, 문화예술교육 진작, 한류 등 문화산업 육성,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등 표현의 자유 보장 같은 기본권적 문제의식을 넘어 문화예술을 일부 계층의 향유물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향유하는 것이자 나아가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성장산업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대체로 공유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세부항목들을 관류하는 근본적 관점, 즉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정책에 관한 기본철학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없는, 그저 ‘좋은 공약 나열하기’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자립적인 기원과 생산-재생산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한 사회 전체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각종 관습적 제도적 규범적 환경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형성되는 고도의 복합적 정신활동의 산물이다. 요컨대 한 나라, 한 사회 문화예술의 성격과 수준은 곧 그 나라, 사회의 ‘삶의 질’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문화예술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들이 그것의 토대가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과연 잘 부합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하며, 만일 잘 부합하지 않는다면 먼저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넓은 의미의 문화적 조건들을 성숙시키거나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책 자체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성공적으로 수행되거나 안착되지 못하고 겉돌다가 흐지부지하게 폐기되고 말 것이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월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응 집단소송 제안 원고모집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연 2만달러 후반대로 세계 30위권에 속하는 부국이다. 또한 적지 않은 굴곡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기본제도들이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문화예술을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문화예술은 일부 특수계층의 향유물이 아니라 전체 구성원 모두가 수준과 여건에 맞춰 향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서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향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국가의 문화예술정책은 이런 기조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과연 우리나라 구성원들이 현재 세계 30위권의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여유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어떤 정치인이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바 있는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가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양극화 심화와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의 지속으로 구성원 절대다수가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아니면 둘 다 없어서 문화예술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구성원 절대다수에게 문화예술의 향유는 어쩌면 사치이고, 그보다는 먼저 여가가, 여가보다는 먼저 최소한의 휴식시간이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절대다수의 구성원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질곡에서 구출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휴식과 여가를 부여하는 것, 물론 그것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와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사회경제적 과제이지만, 역설적으로 이야말로 문화예술 부문의 질적 향상과 ‘민주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새 정부 제일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여가시간 확보와 일자리 나누기, 축적된 잉여의 적절한 분배를 통한 사회적 환원과 내수의 활성화, 기업의 이윤활동 이외의 사회적 분야에서의 노동과 생산활동을 통한 사회적 부의 분배 등 이제까지의 시장경제 중심 패러다임과는 다른 사회적 경제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다수의 대선후보들이 약속한 쉼표 있는 삶, 생활문화시대의 개막, 문화격차 해소, 문화가 있는 행복공동체의 실현, 지역문화 활성화 등의 정책들은 이러한 대전제의 실현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창작·발표 공간 다양하고 넉넉히
1인1기 등 문화예술교육 힘차게
블랙리스트 ‘광기’ 원천 차단하고
문화예술인 빈곤 타개책도 시급
이상이 문화예술의 능동적 향유를 위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는 작업이었다면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문화예술 향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문화예술 전문가들에 의한 고급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동시에 생활문화예술 창조의 일상적 주체인 시민들의 창작과 발표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공연장, 전시장, 창작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이 다양한 규모와 형태로, 또 지역적으로도 고르게 설치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동시에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새로운 프런티어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역시 단순히 문화예술 향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삶의 향유를 위한 노동으로 일과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그렇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또 하나 꼭 추진되어야 할 것은 구성원들의 문화예술 향수 능력의 근본적 제고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강화이다. 초중등 공교육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대폭 강화하여 모든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문화예술 및 체육 분야 등에서 전문적 수준에 가까운 일인일기 습득이 가능하게 한다면 ‘문화예술 융성’은 그리 먼 과제가 아닐 것이다. 이는 동시에 문화예술 부문 전문인력의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며, 입시제도의 개혁과 연결될 경우 뿌리 깊은 교육문제 해결에도 희망적 전망을 비추게 될 것이다. 또한 이에 덧붙여서 이를 지역별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엘시스테마’형 문화예술교육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지역별 계층별 문화격차 해소에도 역시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중요한 사안이 적지 않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문제되었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같은 일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양심의 자유에 족쇄를 거는 시대착오적인 파시즘적 광기의 소산으로서 다시는 재발하지 못하도록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사회경제적 소외와 절대적 빈곤을 개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보장과 문화예술 각 영역이나 산업체 등에서 일하는 관련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기본권, 생활권 등 제반 권리의 보장 역시 기본적 인권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도, 또 문화예술 분야에 만연해 있는 전근대적 관행과 적폐들의 청산이라는 측면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 각 분야의 생산-유통-소비 구조 전반의 건전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적 재정적 지원의 확대와 긴밀히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예술 부문의 산업화 및 성장동력화와 관련해서도 경제논리라는 보편적 측면과 문화예술이라는 특수한 측면을 충분히 고려한 섬세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생산력 수준과 그것을 이룩한 우리 구성원들의 그간의 과잉노동과 헌신에 걸맞은 문화예술 향유 수준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명확히 가지고, 이상과 같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절대적 여가시간의 확보,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 문화예술 보편교육체계의 정립 등 문화예술 향유의 보편화를 위한 기본 여건들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는 일이 될 것이며, 동시에 새 정부의 커다란 치적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