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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병원 시티(CT)로 옛 불상 몸속까지 들여다본다

등록 2017-05-24 20:47수정 2017-05-25 01:15

실상사 불상 시티촬영 머리 속에서 고려사경 발견
불교문화재연구소 첫 시도 성과 쏠쏠
유물 뜯지않고 얼개 제작법 밝힐 수 있어
불상 등 여러 유물 분석에 활용될 듯
남원 실상사 건칠불좌상 머리 부분을 병원에서 시티 촬영한 결과 내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  고려시대 옛 사경의 모습.
남원 실상사 건칠불좌상 머리 부분을 병원에서 시티 촬영한 결과 내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 고려시대 옛 사경의 모습.
사람의 장기, 조직 등을 궤뚫어보는 의료용 시티(CT:컴퓨터 단층촬영)기기가 이젠 옛 불상의 머릿 속, 뱃속까지 들여다본다.

큰 통 모양의 기계 구멍 안에 몸을 밀어넣고 엑스선을 투시해 몸 안의 횡단면을 살펴보는 시티 진단방식이 문화유산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건강검진, 치료 용도를 넘어 옛 유물들 내부를 뜯어 보지 않고 미리 실체를 파악해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는 24일 이와 관련해 눈길 끄는 조사성과를 발표했다. 전북 남원의 고찰 실상사 극락전에 있는 조선시대 건칠불좌상(흙으로 빚은 상에 삼베포를 붙이고 옻칠을 거듭해 만든 불상)을, 최근 병원의 삼디(3D)시티 기기 안에 눕혀서 밀어넣고 찍었더니, 불상 머리 속에서 금속성 물질로 글자를 쓴 문서가 접힌 채 들어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영낙없는 불경의 모양새였다. 연구소 쪽이 그뒤 내부 유물의 보존상태를 알기 위해 불상 아래 난 구멍으로 꺼낸 실물의 정체는 놀라웠다.

나온 유물은 뽕나무 종이에 은가루를 갠 은물로 불교경전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을 정갈하게 옮겨 적은 고려시대 사경. 가로 11.8㎝, 세로 30.6㎝의 크기에 병풍처럼 접을 수 있는 절첩장 형식이었다. 사경 끝부분에는 당시 귀족이나 지역의 유력자로 추정되는 ‘이장계(李長桂)’와 그의 부인 ‘이씨(李氏)’가 시주를 했다는 명문도 나타났다. 세부를 조사한 결과 이 사경은 전체 600권인 <대반야바라밀다경>의 396권을 적은 부분이며, 고려시대 말기인 14세기 희귀본으로 밝혀졌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의 구절들을 은물로 써서 옮긴 절첩장 사경은 지금까지 국내에 4점만 전해질 뿐이다. 발견된 사경은 국보·보물급 가치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왔다.

연구소 쪽은 2005년 엑스(X)선 촬영으로 불상의 머리 속에 유물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에 불상을 시티 기기에 넣어 속내를 통째로 훑은 덕분에 단박에 실체가 드러나, 후속 조사까지 가능해진 셈이다.

성과는 건칠불좌상에 그치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실상사 보광전에 있는 건칠보살입상도 병원에 가져가 시티로 촬영했다. 검사 결과 극락전 불상과 이 불상은 15세기 전후에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진 삼존불(가운데 본존불과 좌우에서 본존을 지키는 두 협시불로 구성된 갖춤 불상) 중 일부로 밝혀졌다. 불상을 뜯지 않는 씨티 비파괴 투시법을 국내 처음 활용해 복장물(불상 내부에 들어간 예물)인 불경을 찾아냈을 뿐아니라, 불상 양식까지 확정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연구소 쪽은 자평했다.

실상사 극락전의 건칠불 좌상 머리 부분에서 시티촬영으로 실체를 확인한 뒤 꺼낸 14세기 고려의 사경본 실물. 불교경전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을 은물로 옮겨 적고 병풍처럼 접을 수 있게 한 희귀사경이다.
실상사 극락전의 건칠불 좌상 머리 부분에서 시티촬영으로 실체를 확인한 뒤 꺼낸 14세기 고려의 사경본 실물. 불교경전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을 은물로 옮겨 적고 병풍처럼 접을 수 있게 한 희귀사경이다.
병원 시티로 불상 내부를 들여다보는 발상은 연구소의 임석규 유적연구실장이 지난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불교 문화유산 특별전을 살펴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나왔다고 한다. 도쿄 부근의 고도 가마쿠라에 있는 중세기의 고찰 겐초지(건장사)에서 소장해온 고승 칠좌상을 복원전시했는데, 씨티 촬영으로 옻칠층 밑의 원래 형상을 파악한 뒤 복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국내에서도 가능하겠다 싶어 처음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임 실장은 “시티 촬영은 유물을 절개, 해체하지 않은 채로 내부 횡단면 구조를 파악할 수 있고 3디프린터를 이용한 모형제작도 가능하다”며 “불상 복장물 외에도 공예품, 가구 등 여러 유물들의 구조와 제작기법을 밝히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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