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모양 손잡이가 달린 문정왕후의 어보. 아들 명종이 어머니에게 사후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해 금으로 만들었다.
한국전쟁 뒤 미국으로 몰래 빼돌려졌던 조선시대 왕실의 일급 보물인 문정왕후와 현종의 어보(임금 등 왕족들의 의례용 도장)가 마침내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지난 수년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이민관세청과 함께 벌여온 두 어보의 몰수 절차를 최근 끝내고 조만간 유물들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으로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환수된 유물들은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금으로 만든 문정왕후어보(왼쪽)와 옥으로 만든 현종어보. 현종어보가 조금 더 크다.
어보는 왕실의 정통성과 최고 권위를 지닌 상징물이다. 이번에 환수되는 두 어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어보는 거북모양 손잡이가 달려있다. 문정왕후 어보는 명종 2년(1547) 명종이 선왕 중종의 계비이자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린 것을 기려 금으로 만들었다. 현종 어보는 효종 2년(1651)에 효종이 맏아들 현종(1641∼1674)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옥으로 만들었으며, ‘왕세자지인’(王世子之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두 어보는 한국전쟁 혼란기 때 미국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과 미국 정부가 소장경위를 추적한 결과 두 어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현지인이 갖고있다가, 2000년 문정왕후 어보를 로스앤젤레스카운티박물관에 팔았고, 현종 어보만 소장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한겨레>가 문정왕후 어보의 미국 유출 사실을 첫 보도(
▷ 관련기사 : 문정왕후 금보, 미국으로 유출됐다)한 뒤인 2013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에 두 어보가 도난품이라며 수사를 요청했고, 미국 쪽은 그해 9월 어보를 압수해 환수절차를 밟아왔다.
한미 정상은 2015년 10월 두 어보의 ‘조속한 반환 원칙’에 합의했으나, 법적 절차가 지연돼 환수까지는 1년8개월이 더 걸렸다. 정부가 미국과의 공조로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은 1893년 고종이 발행한 최초의 지폐인 호조태환권 원판과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점에 이어 세 번째다. 현재까지 존재가 확인된 조선 왕실 어보는 모두 375점이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수가 사라져 46점은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