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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직도 유신시대? 여전히 보도통제 집착하는 문화재청

등록 2017-07-19 15:19수정 2017-07-19 21:59

발굴법인 조사 현장 언론공개 일일이 통제
보도자료 내용도 첨삭하며 사실상 검열
경북 경산 임당동 고분1호분 조사현장. 2015년 도굴된 국가사적 임당동 고분군을 최근 수습발굴하는 과정에서 옛 압독국 지배자의 주요 부장품들을 확인하는 성과가 나왔지만, 문화재청은 발굴경위는 빼고 발굴성과만 언급하는 치적성 보도자료를 내어 빈축을 샀다.
경북 경산 임당동 고분1호분 조사현장. 2015년 도굴된 국가사적 임당동 고분군을 최근 수습발굴하는 과정에서 옛 압독국 지배자의 주요 부장품들을 확인하는 성과가 나왔지만, 문화재청은 발굴경위는 빼고 발굴성과만 언급하는 치적성 보도자료를 내어 빈축을 샀다.
‘5~6세기 신라 지방(옛 압독국 지역)의 지배층 추정 고분 발굴-금동관모, 은제허리띠, 귀걸이 등과 어린이 순장인골도 확인’.

지난달 22일 문화재청은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경북 경산 지역의 5~6세기 국가사적인 임당동 고분군 1호분에서 신라의 지방소국인 압독국 지배자의 인골과 순장인골이 금동관모 등 화려한 부장품을 지닌 채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례적인 고급 유물의 발굴 소식은 신문, 방송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날 보도자료는 온전한 진실을 담고 있지 않았다. 임당동 1호분은 2015년 4월 도굴꾼들이 마구 도굴해 내부가 방공호처럼 훵하게 뚫린 채 발견된 뒤 <한겨레>보도(2015년4월18일치)로 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후 문화재청이 발굴기관인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긴급 수습발굴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굴꾼들이 훑지 못하고 살아남은 1호분 북쪽의 고분갱이 드러난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굴에 따른 조사 경위와 피해상황, 도굴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정비계획 등도 언급됐어야 할 부분인데, 문화재청은 이 부분은 아예 빼고 발굴기관이 정리해 보고한 조사내용을 토대로 자신들의 치적처럼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학계에서는 적지않은 구설이 일었다. 국가사적 관리 정책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임당동 고분군 현장이 문화재청의 홍보무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화재청은 2015년 <한겨레> 첫 보도 당시, 도굴된 것은 아니라고 발뺌하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그해 10월 범인들이 붙잡혀 도굴 사실을 실토하면서 공신력이 실추되는 망신을 당했지만, 별다른 해명조차 하지 않은 바 있다.

학계와 발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임당동 발굴을 계기로 1970년대 유신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문화재청의 보도통제 관행을 뜯어고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 각지 발굴현장의 언론공개 시점과 보도내용을 일일이 지시·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도자료 내용도 기관의 의도에 맞게 첨삭하며 일선 발굴기관의 성과들을 사실상 검열하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문화재 발굴조사의 보도시점과 자료 통제 관행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지시로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이 경주 고분을 중심으로 벌인 기념비적 발굴의 성과들을 혼선 없이 효율적으로 언론에 전하려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 4대강 사업으로 발굴건수가 폭증하고 민간 발굴법인이 우후죽순 생겨나 발굴사업의 대부분을 맡고있는데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구시대적인 국가 보도통제시스템을 여전히 모든 발굴에 적용해 문화재청 구미에 맞는 보도자료만 생산하고, 학계와의 소통을 막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발굴법인 관계자는 “4대강 사업 이후 사전 문화재조사 수요가 늘어 민간발굴법인이 급증하자 이들의 발굴허가권을 지닌 문화재청이 절대적인 ‘갑’으로 군림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화재청이 발굴 지원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자기네가 언론에 알릴 만하다고 판단하는 유적에는 자의적으로 선정한 지도위원들을 내려보내 발굴방향과 성격을 일방적으로 정하는가 하면, 발굴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할 보도자료 내용과 시점까지 간섭하는 적폐가 거듭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발굴 현장에서는 임당동 고분과 근처의 부적리 고분, 진주 중촌리, 영천 완상리 고분 등의 도굴 사례가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문화재청의 보도통제로 제대로 알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적리 고분의 경우 도굴꾼들이 갱도 붕괴를 막으려고 우레탄폼으로 벽면을 다지는 첨단기법까지 쓴 사실이 드러났지만, 보도통제로 이에 대한 대비책이 공론화될 여지도 막혀있다.

상당수 문화재 전문가들은, 발굴유적·유물이 공공유산인 만큼 조사과정에서 문화재청 보고체계는 유지하되 공론화를 위한 현장공개와 보도자료 배포 등의 권한은 학계와 현장 발굴기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기적으로는 2000년대 이래 난립한 민간발굴회사들이 부동산 개발업자의 용역을 받아 발굴조사를 주도하는 현재의 발굴 시스템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공영기관 위주로 혁신해 조사의 공공성을 높이고 학계가 운영을 감시·견제할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청이 발굴 주체도 아닌데, 단지 뒷북을 맞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보도자료를 일일이 만들고 통제해온 건 잘못된 관행으로 바꿔야한다고 본다”며 “공공중심으로 발굴제도를 개편하는게 근본 대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9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문화재 발굴을 정부가 주도하는 ‘매장문화재조사 공영제’를 도입해 2022년까지 연간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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