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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던’ 고대교회 예배현장이 눈앞에 다가왔다

등록 2017-08-10 20:15수정 2017-08-10 21:01

인류문명의 뿌리, 아나톨리아
(3)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발굴 7년여만에 폐허에서 되살아난 라오디게아의 교회와 신전유적들
초창기 7대 교회 중 하나 부자도시였지만 미지근한 신앙으로 책망받아
인근 석회온천 명소 파묵칼레에선 고대로마건물서 학술토론회도
넘치는 부와 향락, 나태와 죽음이 뒤섞인 고대도시 유적의 진수
7년여 동안의 발굴과 복원 작업 끝에 옛 모습을 상당부분 찾은 고대 라오디게아 교회당 터.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로, 이 유적은 그 실체가 확인되는 드문 사례다. 답사단은 지난달 초 유적 현장이 막 공개된 직후 답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7년여 동안의 발굴과 복원 작업 끝에 옛 모습을 상당부분 찾은 고대 라오디게아 교회당 터.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로, 이 유적은 그 실체가 확인되는 드문 사례다. 답사단은 지난달 초 유적 현장이 막 공개된 직후 답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차라리 네가 차갑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세기 사도 요한이 주님의 계시를 받아 썼다는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엔 통렬한 질책을 당하는 ‘너’가 등장한다. 바로 서아나톨리아 라이코스 고원에 자리한 고대 도시 라오디게아다. 한국 답사단이 지난달 19일 세 번째로 찾은 이 도시유적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교역 거점이었고, 초기 기독교의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의 소재지다. 바로 옆에 석회암 온천으로 지금도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휴양도시 히에로폴리스(현 지명은 파묵칼레)가 있어 로마시대에는 당대 세상의 모든 영화와 향락을 누렸던 곳이다. 그러나 부유함에 취해 전교에 소극적이던 현지 신도들의 태도가 성서에 지적된 까닭에 후대 겉치레 신앙의 대명사로 남게 됐고, 7세기 비잔틴 시대 대지진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는다. 지금도 목회자들은 설교 때 라오디게아인들의 미지근한 신앙을 반면교사로 인용하곤 한다.

이 도시의 과거 영화는 에게해변의 에페스에서 동쪽 내륙의 라오디게아로 이어지는 160㎞ 가도를 달리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지중해 특유의 올리브밭이 사라지고 높은 산악 연봉과 목화, 밀이 자라는 고원 대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역 특산인 면화와 양모, 대리석, 곡물이 기독교 신앙과 함께 그리스, 로마, 시리아, 이집트 등지로 흘러갔던 라오디게아 가도는 실크로드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 통로 중 하나로 꼽혀왔고 교역항 에페스와 더불어 인류사에 처음 금융업이 싹튼 곳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최근 복원된 고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설교단. 기독교사 초창기 세계교회를 주도했던 쟁쟁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여기서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오세윤 사진가 제공
최근 복원된 고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설교단. 기독교사 초창기 세계교회를 주도했던 쟁쟁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여기서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오세윤 사진가 제공
이런 영욕을 간직한 라오디게아가 21세기에는 세계 고고역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유적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극장 터의 일부 폐허 외에는 자취를 찾을 길 없었으나 2002년부터 파묵칼레대학 조사단이 15년간 벌여온 발굴·복원 작업으로 8㎢가 넘는 장대한 도시유적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기원전부터 고고발굴사에 남을 상전벽해 같은 복원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달 19일 낮 폭염 속에 언덕 위의 유적 현장에서 답사단을 맞은 발굴단장 젤랄 심셰크 파묵칼레대 교수는 유쾌한 말투로 자부심을 내보였다. “현장은 10년 전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지만, 지금은 수백 동의 건물과 대로, 골목길이 교차하는 고대도시로 바뀌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유적 곳곳을 돌아본다. 시리아로 통했다는 동서 900m의 중앙대로인 시리아길과 도리아풍의 주두 기둥이 치솟은 중앙과 주변의 신전들, 대로 사이 격자형으로 조성된 상점가와 집터 등이 보인다. 신전 석주의 오리엔트풍 물결무늬들과 석회석 길바닥에 남은 과거 마차 수레바퀴의 흔적들, 소리가 우렁차 지금도 관할 데니즐리주의 상징 동물인 수탉 두 마리가 마주 보는 건물 지붕 프리즈 장식, 정연한 도시계획의 흔적 등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답사단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4세기께 건립된 라오디게아 교회당의 복원 현장이었다. 중앙의 아폴로 주신전 북동쪽에 자리잡은 이 교회당 복원현장을 보고 답사단은 건실한 내부 얼개와 장식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10년 처음 유구 흔적들을 발굴한 이래 다국적 전문가들이 숱한 지진으로 무너지고 뒤엉킨 잔해들을 세심하게 모으고 정교하게 재조립했다고 한다. 전모를 공개한 지 열흘이 채 안 되었는데, 답사단으로는 처음 유적을 보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교회당은 심셰크 교수가 “알라(하느님)와 선지자 예수,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설명한 세 개의 출입문을 비롯해 설교단과 제단 터, 육중한 기둥들이 들어선 내부 공간 나오스(홀로 거룩한 방을 뜻함), 그 옆으로 연결되는 벽체, 세례소, 바닥의 세밀한 모자이크 그림들도 옛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은 채 관객들을 맞았다. 특히 세 개의 하트 무늬가 연이어 연결된 바닥 모자이크 문양이 인상적이다. 심셰크 교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종교적 상징성을 띤 기하학, 식물 무늬의 모자이크가 주로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9일 고대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현지 학자들과의 학술간담회가 열렸다. 한국 답사단은 회의장 둘레에 널린 고대 유물들을 보며 색다른 감회에 젖었다. 메두사 머리가 새겨진 로마시대의 석관이 회의 석상 앞에 보인다.
지난달 19일 고대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현지 학자들과의 학술간담회가 열렸다. 한국 답사단은 회의장 둘레에 널린 고대 유물들을 보며 색다른 감회에 젖었다. 메두사 머리가 새겨진 로마시대의 석관이 회의 석상 앞에 보인다.
이 교회당은 4세기 중엽 일요일을 안식일과 예배일로 규정한 라오디게아 종교회의가 열린 실제 공간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발굴 복원의 역사적 의미가 크며 로마 교황청도 추기경을 파견해 답사하는 등 관심이 크다는 게 발굴단 쪽의 설명이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7세기까지 비잔틴제국의 중요한 성소로 이어졌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교회당 복원 공개는 이 도시를 태만한 신앙의 징표로만 생각해온 성서의 선입관을 바꾸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의 질책 뒤 신앙심을 다잡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더욱 강인한 신앙 거점을 꾸려나갔다는 반증이 출현한 셈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지자들은 막 꾸짖었지만,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는 우둔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실리와 비애, 인생의 쾌락과 고통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히에라폴리스의 산야에 흩어진 고대 석관의 잔해들과 라오디게아 교회당의 화려하면서도 심오한 내부 공간들은 나그네들에게 라틴어 격언인 ‘카르페 디엠’(순간에 충실하라)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가르침을 번갈아 일깨워주었다.

파묵칼레/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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