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더 시너>의 한 장면. 주인공 코라는 산책 나온 젊은 의사를 이유 없이 살인한다. 기존의 ‘범인 찾기’ 서사에서 ‘범행 동기’를 좇는 새로운 시도를 담은 작품이다.
뉴욕 북부의 한 호수공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코라 타네티(제시카 비엘)라는 여성이 애인과 함께 호수에 놀러 온 젊은 의사 프랭키 벨몬트(에릭 토드)를 칼로 수차례 찌른 것이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공원에 있던 수많은 이들이 이를 목격했다. 코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즉시 체포당한 뒤 범행을 인정한다. 용의자, 피해자, 증인, 범행 수법, 자백 등이 모두 한자리에서 확인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다. 담당 형사 해리 앰브로스(빌 풀먼)는 바로 이 점에 의문을 품는다. 강력사건이 이토록 명확하고 단순하기란 어렵다. 이 사건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서 더 중요해 보이는 질문이 빠져 있다. 그녀는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유에스에이 네트워크> 채널에서 이달 초부터 방영을 시작한 <더 시너>(원제 ‘The Sinner’)는 범죄의 ‘동기’에 집중하는 독특한 스릴러물이다. 그동안 범죄스릴러의 전형적인 범인 찾기 구조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작품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 작품처럼 ‘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경우도 드물다. 그 비범함은 도입부 전개에서부터 드러난다. 보통의 범죄스릴러가 시체의 발견이나 잔혹한 범행 묘사로 시작한다면, <더 시너>는 범죄의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코라는 시아버지가 운영하는 가족회사에서 남편과 맞벌이하며 어린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간간이 회상으로 끼어들고 약간의 수면장애가 묘사되나, 어디에도 살인의 암시는 없다. 휴일인 주말의 환한 오후, 가족을 데리고 찾은 공원에서 코라는 어린 아들에게 과일을 깎아주던 칼로 갑자기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다.
근래 드라마에서 가장 충격적인 오프닝 중 하나였다. 코라가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 남짓이다. 과연 동기를 찾는 것만으로 전체 8부작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관한 우려는 앰브로스가 코라를 취조하는 장면에서부터 깨끗이 사라진다. 그는 프랭키 커플이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서 자기도 모르게 칼을 들었다는 코라의 말에 반문한다. “보통사람들은 음악 소리가 크다고 누군갈 죽이지 않아요. 왜 그랬나요?” 그는 ‘결코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코라의 어둠을 알아본다. 그리고 질문을 바꾼다. 그녀는 왜 사람을 죽일 만큼 분노한 것일까? 동료들은 명백한 사건을 파고드는 앰브로스를 말리지만, 그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이 범죄의 범람을 막는 근원적인 방법이라 믿는다.
<더 시너>의 이러한 관점은 국내의 실제 범죄사건을 떠올려볼 때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세 자녀를 살해한 남자의 범행 동기가 중년 가장의 우울로 전형적 서사화 되거나 혐오범죄에서 그 동기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더 시너>는 좋은 범죄수사물은 시대의 어둠을 성찰하게 한다는 진리를 새삼 증명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