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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잘사는 삶을 욕망했던 한국인들

등록 2017-08-12 15:06수정 2017-08-12 17:39

[토요판] 이영미의 광화문 시대
④ 1960년대 영화

50년대는 어설픈 ‘미국 모방’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 유행
경제개발 희망 반영된 60년대
광화문 등 세종로 장면 많아

중앙청 앞 고시 합격자 확인 뒤
기쁜 눈물 짓는 <마부> 대표적
64년 영화 <맨발의 청춘>도
미국산 쌍둥이 건물이 배경
1961년에 나온 영화 <마부>(강대진 감독)는 젊고 반듯한 새로운 가부장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다. 현대 문명에 밀려 쇠락해가는 마부 아버지인 춘삼(오른쪽·김승호)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큰아들(신영균)과 얘기하는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1961년에 나온 영화 <마부>(강대진 감독)는 젊고 반듯한 새로운 가부장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다. 현대 문명에 밀려 쇠락해가는 마부 아버지인 춘삼(오른쪽·김승호)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큰아들(신영균)과 얘기하는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1960년대는 영화 속에 광화문이 많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4·19와 5·16으로 시작된 1960년대가 지금의 대한민국 체계가 확실히 정착하는 시기였다는 점은 이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하다. 제1공화국 때 헌법과 기본적인 정치체제, 반공주의 등이 정립되기는 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경제정책을 만들어 추진하고 사회문화적 법규들이 정돈되어 국민들에게 내면화되어 관행으로 자리잡는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대중예술사에서도 이 시기는 독특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어설프기 이를 데 없었던 미국 모방의 노력은 1960년대에 이르러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1950년대는 중국 음악 질감이 완연한데도 제목은 ‘샌프란시스코’라고 붙인 노래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기를 모으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이미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페르샤 왕자’,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의 노래가 대박 히트를 했다. 지금 들으면 포복절도할 정도이지만(1950년대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이란도 아니고 웬 페르샤란 말인가!), 당시에는 이런 노래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널리 불렸다.

하지만 1960년대는 달라졌다.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기의 정점에 오르지는 못했다. 1961년에 힐빌리 스타일을 세련되게 구사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손석우 작사·작곡)의 인기로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노래의 시대는 끝이 났다. 물론 1960년대 인기 대중가요 가사에도 ‘왓 셜 아이 두’, ‘오 헬프 미’(이상 최희준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나는 사뭇 뮤직 듣는 척을 했지’(김상희 ‘처음 데이트’)처럼 과시적인 영어가 난무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 노래에는 당대 서울의 리얼리티가 있다. 서양의 현대화된 대도시를 향한 욕망이 과하게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가보지도 못한 페르샤(페르시아)나 샌프란시스코, 아리조나(애리조나)를 노래하는 수준은 벗어난 것이다.

<마부>는 광화문, <자유부인>은 시청 앞

이런 변화는 1960년대에 들어서서 비로소 사람들이 근대적인 도시화와 산업화, 경제발전에 대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면서 약간의 안정감이 생겼고,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기아와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한국 사회에 ‘잘살아 보세’의 새로운 희망이 부추겨지던 시대였다.

이런 1960년대 전반기에 인기를 모았던 두 영화에 세종로 거리는 아주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장면을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나는 영화 <마부>(강대진 감독, 1961)의 마지막 장면이다. 4월 혁명과 5·16 군사정변 사이에 제작된 <마부>는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승호가 ‘한국인의 불쌍한 아버지’ 이미지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는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아버지는 부자의 첩이 소유한 말을 부리는 마부이다. 짐을 실어 나르는 삯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아내 없는 홀아비가 함석과 판자로 엉성하게 바람막이를 한 산동네 작은집에서 4남매를 키웠다. ‘마부 자식’이란 업신여김 없이 살게 해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큰딸은 청각장애인으로 매일 남편에게 맞고 친정으로 쫓겨 오는 게 일상이다. 다방 레지를 하던 작은딸은 ‘마부 딸’임을 속이고 빌린 양장을 빼입고 부자 남자들을 만나 팔자 고칠 생각을 하지만 역시 잘될 리 없다. 돌봄을 받지 못한 중학생 막내아들은 좀도둑질과 싸움질이 일상이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돈벌이도 시원찮다. 이제 마부란 쇠락하는 직업이다. 삼륜차(바퀴가 셋인 용달차)가 나와 짐을 옮기니 마부의 벌이는 줄어들고 있다. 숨 쉴 구멍을 찾기가 힘든 이 집안의 희망은 오로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장남뿐이다. 듬직한 체구의 신영균이 연기했다.

맏딸은 자살하고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일을 못 하는데다 마주에게 말까지 빼앗긴다. 늙어가는 아버지는 이 위기상황을 타개할 능력이 없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자신들을 관리하는 마주의 첩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선처해 줍쇼” 하며 굽신거리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이렇게 위기에 처한 가부장의 가족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사람은 젊고 반듯하며 능력 있는 장남뿐이다. 새로운 가부장의 탄생인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눈 쌓인 중앙청 앞문에 붙은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장남의 이름을 발견한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는 장면이다. 아마 당시 극장에서는 눈물 어린 박수가 터져 나왔으리라. 바로 중앙청 앞 세종로에서, 위기의 늪에 빠졌던 가족은 ‘근대적이고 능력 있는 청년 남자’에 대한 믿음으로 희망찬 ‘재건’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1956년에 나온 영화 <자유부인>(감독 한형모)은 주로 서울시청 주변을 무대로 찍었다. 50년대는 광화문보다 서울시청 앞과 한국은행 앞 로터리가 번화가였다. 영화 속 주부인 오선영(김정림)이 대학생인 춘호(이민)와 댄스홀에서 사교춤을 추는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56년에 나온 영화 <자유부인>(감독 한형모)은 주로 서울시청 주변을 무대로 찍었다. 50년대는 광화문보다 서울시청 앞과 한국은행 앞 로터리가 번화가였다. 영화 속 주부인 오선영(김정림)이 대학생인 춘호(이민)와 댄스홀에서 사교춤을 추는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50년대 영화였다면 이곳이 이렇게 희망찬 공간으로 비칠 수 있었을까 싶다. 흥미롭게도 1950년대의 영화들은 근대적인 서울을 과시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이곳은 쏙 빼놓고 비춰주지 않았다. 대표적인 영화가 <자유부인>(한형모 감독, 1956)이다. 정비석의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인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은 집을 나와 시내로 향한다. 집이 있는 곳은 북촌인 듯하다. 가옥은 북촌에 흔했던 중산층의 기와집이다. 오선영이 바로 옆집 사랑방에 사는 날라리 대학생인 춘호와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경복궁 옆 도로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은 세종로를 건너뛴 채 바로 서울시청 앞으로 연결된다. 춘호가 목에 걸고 나온 카메라로 오선영을 찍고 그 사진을 영원한 마스코트로 간직하겠다고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는 곳이 서울시청 앞이다. 앙탈하듯 항의하는 오선영에게 춘호는 “제 자윱니다”라고 말한다.

50년대 단골무대는 한국은행 앞 분수대

춘호의 옆으로는 서울시청의 담벼락이 있고, 어깨너머로 우뚝 솟은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이 보인다. 건축사학자 안창모(경기대 교수)에 의하면, 1920~30년대에 경성부청과 부민관으로 지어진 두 건물은 당시로서는 매우 모더니스틱한 건축으로, 고전주의적 위압감을 한껏 드러낸 조선총독부 청사와는 꽤 다르다고 한다. 후에 오선영과 춘호는 <체리 핑크 맘보> 음악에 맞춰 쌍쌍이 차차차 춤을 추는 댄스홀까지 드나들게 되는데, 이렇게 ‘자유로운’ 두 인물에게 어울리는 공간은 중앙청 앞 세종로가 아니라 서울시청 앞이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1950년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또 있다.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과 한국은행이 있는 분수대 로터리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가장 화려했던 곳 충무로(옛 혼마치), 명동(옛 메이지마치)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것도 항상 중앙우체국에서 한국은행 쪽을 바라보는 앵글로만 비친다. 이곳은 1910년대에 경성부청이 있던 곳으로, 1926년 경성부청이 덕수궁 앞으로 옮겨가면서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조선저축은행(이후 제일은행, 현재 SC은행)이 서게 됐다. 경성부청 앞과 조선은행은 직선도로인 소공로로 연결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조선호텔이 서 있다. 그야말로 일본인의 상업·금융의 중심지로 경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모던한 거리였던 셈이다. 해방 후는 물론 1950년대까지도 이곳은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화려한 거리였다. 미국식 자유주의와 전쟁의 영향으로 개인의 욕망이 표면화되었지만 ‘사바사바’와 ‘빽’이 새로운 유행어가 될 정도로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었던 1950년대에, 권위주의적인 중앙청 건물과 세종로가 아닌 모던한 서울시청 앞과 화려한 동화백화점 앞 로터리가 비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64년에 나온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은 신성일(왼쪽)과 엄앵란(오른쪽) 콤비를 낳으며 청춘영화 붐을 일으켰던 히트작이다. 이들 젊은 연인은 명동이 아닌 세종로를 무대로 연애를 했다. 주인공 뒤에 보이는 6층 건물은 시청 앞
 개풍빌딩이다. 세종로는 1961년에 완공된 미국의 쌍둥이 건물(현재의 미국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건물이 있던 세련된 거리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4년에 나온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은 신성일(왼쪽)과 엄앵란(오른쪽) 콤비를 낳으며 청춘영화 붐을 일으켰던 히트작이다. 이들 젊은 연인은 명동이 아닌 세종로를 무대로 연애를 했다. 주인공 뒤에 보이는 6층 건물은 시청 앞 개풍빌딩이다. 세종로는 1961년에 완공된 미국의 쌍둥이 건물(현재의 미국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건물이 있던 세련된 거리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1964년 당대 최첨단 영화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에서는 청춘남녀의 연애가 명동이 아닌 세종로에서 펼쳐진다. 신성일과 엄앵란 콤비를 낳으며 ‘청춘영화’ 바람을 일으켰던 영화, ‘눈물도 한숨도 나 홀로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로 시작하는 최희준의 주제가(이 명가사는 극작가 유호의 작품이다)로 작곡가 이봉조의 시대를 열었던 전설적인 영화다. 뒷골목 조폭의 ‘똘마니’인 ‘거리의 자식’ 두수를 연기하는 신성일은 하얀 점퍼에 발목까지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제임스 딘처럼 건들거리며, 외교관 딸 요안나 역의 엄앵란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엄마한테 거짓말해보긴 첨이에요”라며 순진한 표정을 짓는다. 우연히 불량배들에게 봉변당할 처지의 요안나를 구해준 두수의 원룸아파트를 요안나가 제 발로 찾아오고, 둘은 수줍은 표정으로 골목을 걸어 큰길로 나온다. 그런데 그 큰길이 1950년대 연애 장면에는 한 번도 등장한 바 없는 세종로이다.

미국이 지어준 건물에 경제기획원 입주

그들은 서쪽 인도의 길을 걷고 있고, 찻길 건너에 유에스오엠(USOM: 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 미국대외원조기관)과 경제기획원의 쌍둥이 건물이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지금과 달리 영화 속에서는 한눈에 띌 정도로 우뚝 선 가장 높은 건물이다. 이 쌍둥이 건물은 미국이 돈을 대어 1961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유에스오엠 건물에는 1968년 미국대사관이 입주하여 지금까지 쓰고 있고, 경제기획원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쓰다가 구조변경 및 개축 하여 2012년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되었다. 세종로 끝에 서 있는 중앙청 청사는 중앙의 탑을 세우고 화려하게 장식을 하며 계단을 올라야만 건물에 들어설 수 있는 고전주의적 위엄을 한껏 뽐내는 돌 건물이었다. 그에 비해 이 쌍둥이 건물은 간결하게 직선적으로 디자인된 현대적인 건물로 아주 대조적인데, 그런 점에서 세종로가 일제강점기의 색깔에서 미국의 색깔로 바뀌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건물이라 할 만하다. 세종로에서 연애하는 청바지와 단발머리 청춘남녀의 배경으로 중앙청을 비춰주지 않고 현대적인 쌍둥이 건물을 보여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현대 미국식 질감의 건물 앞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연애는 새로운 느낌을 풍긴다. 여기에 이봉조가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재즈가 이들을 감싸 안고 있다.

이 영화 속의 현대적 건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종로에서 택시를 잡아탄 남녀는 레슬링이 벌어지는 장충체육관으로 향한다. 그 건물 역시 1963년에 준공된 현대적인 건물이다. 얼마 후 그들의 연애 장소는 서울시청 앞으로 옮겨가는데, 이 장면에서도 그곳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 개풍빌딩(현 부산은행 서울지점 위치)이 배경으로 비친다. 1958년에 준공된 개풍빌딩은 6층에 지하 1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당시에는 꽤 드문 수직 루버까지 있었다. 당시 유에스아이에스(USIS: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미국공보원)가 쓰고 있었고, 반도호텔(현재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건물)에 버금가는 높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이렇게 서울도 세종로도 그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미국의 대도시처럼 현대적이고 잘사는 삶을 욕망했던 한국인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현실적인 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그 쌍둥이 빌딩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었고, 비록 아버지는 가난하고 배운 것 없이 늙어가는 마부이지만 그 자식은 반듯하고 능력이 있어 폐허가 된 가족과 사회를 재건할 것 같았다. 이 시대 영화가 당당하게 세종로 거리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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