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과 스밈
온갖 억측이 들끓었다.
지난 7일 김종진 청장 임명으로 마침표를 찍은 문화재청장 인사는 내내 구설수 속에 진행됐다. 전 정부 시절 임명된 나선화 청장이 새 정부 출범 즈음해 5월 사직서를 냈지만, 정부는 석달 지나도록 인선을 질질 끌었다. 그는 이달 초 본의 아니게 역대 최장수 청장 재임 기록까지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가야사 복원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안한 상황에서 당장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입안해야 할 청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업무 공백이 장기화했다. 하마평에 오른 문화재학계 일부 인사들을 특정 종단과 전임 청장이 민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정치권 거래설, 암투설까지 흘러나오면서 문화재 동네는 혼란에 휩싸였다.
김종진 청장은 문화재관리국 시절부터 30여년간 행정을 전담해온 문화재청 터줏대감이다. 사상 첫 내부 승진으로 청장이 된 것은 외부 전문가들 가운데 적격자가 없다는 윗선의 고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미술사학계 출신의 여성 전문가 변영섭, 나선화씨를 잇따라 청장에 임명하는 파격을 내보였다. 하지만 현안인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숭례문 복원, 고도 보존 정비 등에서 해결책은커녕 문제를 더욱 꼬이게 했으며, 뚜렷한 정책 소신도 관철시키지 못하는 무능만 부각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화재청은 다른 부처에 비해 조직, 예산 등은 작지만, 행정의 전문성과 시민단체, 학계와의 협력이 긴요하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김 청장을 고졸 출신의 입지전적인 공무원으로 소개하면서 기대감을 표출했지만, 정작 청 내부 공무원들 사이에는 김 청장의 역량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게 눈에 걸린다. 사적과장, 무형문화재과장, 문화유산국장 등을 지내며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준비 작업과 풍납토성 민원 업무 등을 맡았으나 소신을 내세워 추진한 정책적 성과가 별로 없다는 평이 많다. 반구대, 경주 월성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 관리정책 혁신, 발굴 공영제 개편, 국고보조사업 재정비 등 개선해야 할 내외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조직을 추동할 만한 비전과 개혁 리더십을 보여줄지 의문이라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청 내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 국과장, 차장 시절 자신만의 역점 정책을 고삐 잡고 밀어붙인 적이 없다”며 “청장이 되면 달라질 것이란 기대도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비전이 안 보이고 구체적인 아이템을 갖고 추진할 의향도 잘 안 보인다”고 했다.
문화재청 공무원들은 새 청장이 내부 조직 정비와 정책 방향 등에서 자기만의 소신과 목표부터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재청은 설악산 케이블카 신설 논란이나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뜨거운 현안들의 경우 스스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전문가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에 판단을 떠밀고 의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그러면서도 정부기관 청렴도 평가에서는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화재수리업체, 사찰, 지방자치단체 등과 청 공무원들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제대로 근절되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관료들을 잘 아는 김 청장이 청 내부의 공직 기강을 바로잡고,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논란부터 발굴 현장 보도통제 관행에 이르기까지 첩첩이 쌓인 문화재행정의 적폐들을 솎아낼 정책방향을 내놓을지 문화재 동네가 지켜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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