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평화·인권에 가장 먼저 눈떴던 아름다운 제국 ‘히타이트’

등록 2017-08-24 17:59수정 2017-08-24 21:24

[인류문명의 뿌리, 아나톨리아 (5)-히타이트와 하투사 유적]

3500년전 아나톨리아 지배했던 ‘수수께끼의 제국’
야즐르카야 암벽 신전터에는 정복지 신앙 수용한 관용이
체계적인 국가시스템 보여주는 하투사의 건물터, 성문들
이집트와 맺은 세계최초의 평화조약문 점토판도 유명
지난 7월23일 터키 보아즈칼레의 산기슭에 있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도읍터 하투사 도시 유적을 답사단이 살펴보고 있다. 신전, 곡물창고,저수조, 주거지 등으로 이뤄진 유적은 용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구획된 것이 특징이며 배수로도 잘 갖춰져 있다.
지난 7월23일 터키 보아즈칼레의 산기슭에 있는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도읍터 하투사 도시 유적을 답사단이 살펴보고 있다. 신전, 곡물창고,저수조, 주거지 등으로 이뤄진 유적은 용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구획된 것이 특징이며 배수로도 잘 갖춰져 있다.
기원전 1700~1200년께 터키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히타이트 제국은 고고학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발굴하고 싶어하는 ‘꿈의 제국’이다.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고대문명이란 뜻이다.

고대이집트, 바빌로니아와 함께 고대 오리엔트의 3대 제국이었던 히타이트는 1834년 프랑스 발굴대가 앙카라에서 동북쪽으로 200km 떨어진 보아즈칼레에서 자취를 발견했다. 그 뒤 20세기초 막대한 분량의 쐐기꼴문자 기록판들이 유적에서 쏟아져나오면서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독일, 체코 학자들이 점토판의 쐐기글자들을 해독하면서 제국의 운영과 사람들의 생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고대문명이라고만 알고있지만, 히타이트인들이 철기를 전쟁과 실생활에서 널리 썼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거의 없으며, 일부 고급공예품 정도에만 나타날 뿐이다.

학자들이 이 제국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류사상 최초로 인권과 평화, 관용, 기록에 눈뜬 선진적인 의식을 갖춘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274년 히타이트의 제왕 무와탈리 2세가 전쟁중이던 람세스 2세의 이집트 제국과 시리아의 카데시에서 맺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문 점토판(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소장)을 비롯한 다양한 점토판 문서들이 이를 실증한다. 이 문서들은 결혼과 이혼에서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일종의 원로원, 의회 격인 ‘판쿠’ 제도와 제사장들이 왕을 견제하는 권력구조를 만들었고, 정복지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고 조공과 부역의 의무만 지우며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게 해준 관용의 제국이었음을 전한다. 역사학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가장 선진적인 의식과 제도를 지닌 고대 문명의 시원으로 흔히 그리스를 꼽았지만 훨씬 앞선 시기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휴머니즘 문명이 존재했음을 히타이트가 일깨워줬다”고 말한다.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히타이트인의 제례용 토기. 결혼예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네개의 풍속부조가 붙여져 있다. 히타이트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히타이트인의 제례용 토기. 결혼예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네개의 풍속부조가 붙여져 있다. 히타이트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

지난달 23일 아나톨리아 한국 답사단이 찾아간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사 유적과 신전터가 있는 야즐라카야 유적에서 이 아름다운 제국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혀 유적이 있을 것 같지않은 목가적 분위기의 밀밭길 언덕을 올라가자 암산 사이 협곡이 나타났다. 그 양쪽의 암벽 사이 공간에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는 축제 마당과 왕의 즉위식, 장례식 때 성소로 쓰였던 신전의 자취가 나타났다. 암벽마다 다양한 신들과 제왕의 모습을 새긴 상들이 새겨져있다. 히타이트의 최고신이라는 폭풍 신 테슈프를 비롯한 태양신, 산의 신 등 여러 신들이 새겨진 이 부조들은 히타이트 조각예술의 진수로 꼽힌다. 눈길을 끈 건 삼각형 고깔을 쓴 12명의 신이 낫 모양의 칼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었다. 마침 현지 차름주 당국이 이 신상의 복식과 자태를 그대로 재현한 현지 청년들을 도열시켜 그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죽은 왕을 테슈프신의 아들 ‘샤루마’신이 저승신 앞으로 이끌고 가는 장면도 맞은편 암벽에 보였다. 이 지역에서 10여년을 발굴해온 독일조사단의 안드레아스 셰흐너 단장은 “이토록 다양한 신이 자리잡은 만신전이 하투사 근교에만 서른 곳 넘게 확인된다”면서 “각 정복지의 토착신앙을 그대로 존중하며 흡수한 다신교 신앙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히타이트 수도 하투사의 성문을 장식했던 스핑크스상. 2011년 독일로부터 반환되어 유적 들머리에 있는 보아즈칼레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히타이트 수도 하투사의 성문을 장식했던 스핑크스상. 2011년 독일로부터 반환되어 유적 들머리에 있는 보아즈칼레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2km 떨어진 옛 도읍 하투사 유적에서는 지세와 지정학적 요소들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도시를 건설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쪽의 앗시리아와 남쪽의 이집트, 시리아 사이의 길목에 자리잡은 하투사는 산등성이에 길이 250m, 높이 20m가 넘는 대형 성벽과 성문을 건설한 위쪽 성채와 아래쪽 도시로 구분된다. 장대한 위용을 지닌 성채를 산정에 지어 주위에 제국의 권위를 과시하는 시각적 상징물로 삼고 아래 도시쪽엔 정연하게 구획된 신전과 저장고, 주거지, 저수조 등을 지어 체계적으로 도읍을 경영했다는 게 안드레아스 단장의 말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뭄에 대비해 축구장 넓이의 종자 보관 창고를 지었고, 건물터 가운데보다 주변 언저리 부분을 3도 정도 낮게, 비스듬하게 바닥을 조성해 배수로를 틔웠다고 한다. 히타이트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점토판 유물들도 바로 이 신전터 부근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산정 성벽 위에 있는 ‘스핑크스의 문’에 장식된 스핑크스상은 1907년 발굴 당시 독일학자들이 독일로 가져갔다가 오랜 교섭 끝에 2011년 현지 보아즈칼레 박물관에 환수됐다고 한다. 평화의 제국이란 별칭에 걸맞는 국제 문화재 인도교섭의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보아즈칼레 박물관과 앙카라 아나톨리아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히타이트 시대의 다양한 점토판과 각종 유물들은 히타이트인들이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생활인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왕을 신과 동일시했던 다른 전제국가들과 달리 히타이트인들은 왕도 신과 구분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신 앞에 오직 정직해야한다는 믿었다. 국가제도는 물론 각종 요리의 레시피까지 다양한 생활상들을 점토판과 토기 부조들을 통해 남겨놓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결혼식장 하객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부조해놓은 히타이트의 대형 제례용 토기는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온기를 풍기며 다가왔다. 답사 내내 통역과 안내를 자청한 김종일 서울대 교수는 “히타이트인들은 인류의 공생과 평화, 통합을 의식하고 이를 국가와 제도의 운영에서 실천했다”며 “그들의 역사적 자취는 단순한 고고학적 성과가 아니라 인문학적 차원에서 계속 성찰하고 되새겨야할 전범과도 같다”고 말했다. <끝>

보아즈칼레/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