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제공
영화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살충제 달걀’이 나오리라는 것을.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맨얼굴을 블랙 코미디로 그려내기도 했다. <옥자>를 포함, ‘살충제 달걀’ 사태를 미리 경고한 동물과 인간에 관한 영화 5편을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 과유불급이니라… 영화 <옥자>
거칠게 요약하자면 영화 <옥자>는 돼지의 정해진 운명을 깨려는 한 아이의 투쟁기다. 돼지를 ‘항정살, 목살, 삼겹살’이 아닌 ‘친구’로 생각한다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옥자>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제공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에게 ‘옥자’는 10년간 함께 자란 친구이자 가족이다. 옥자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슈퍼돼지’다.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큰 덩치와 하마와 돼지를 섞은 듯한 선한 외모가 특징인데 절벽에 매달린 미자를 구해낼 정도의 영리함까지 갖췄다.
미란도는 옥자를 비롯해 모두 26마리의 새끼 돼지를 전 세계 농장에 보내 기르게 하는데 이는 지하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대량생산용 유전자 조작 실험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미란도가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면서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영화 전반부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미자와 옥자의 우정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자본의 논리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현대식 축산의 폭력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충격적인 장면은 살아있는 옥자의 살점을 끄집어내 구워 맛보는 장면이다. 피부 속으로 찔렀다 빼면 좁은 통속으로 살점이 뽑혀 나오는데 실제로 축산업계에서 쓰는 물건이라고 한다.
돼지 이마에 스턴건(충격총)을 쏴 절명시키고 회전통에서 굴러나오게 한 뒤 거꾸로 매다는 도살장 구조는 독일 다큐멘터리 <아워 데일리 브레드>에서 빌려왔다고 봉 감독은 설명했다.
봉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도살장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그때의 감상을
<씨네21>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콜로라도에서도 “우리 시스템이 가장 인도적”이라고 자랑하더라. 위생관리도 잘하고 스턴건 도살은 NGO도 추천하는 방식이다. 나 역시 도살장 내부를 볼 때는 압도적 냄새와 초현실적 이미지에 멍했고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눈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긴장해 있다가 바깥으로 나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기나긴 소의 행렬을 마주쳤을 때 무너졌다. 소들의 경로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이 고안한 선진적 방식에 따라 공포를 최소화하도록 디자인돼 있었지만 닥칠 일을 모르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힘겨웠다. 6개월간 살이 찌워진 다음 단계적으로 도살장에 가까워질 수만 마리 소의 무리가 자동차로 30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육식하지 말자” 대신 봉 감독은 “대량생산에 동물을 편입시킨 공장식 축산이 문제”라고 말한다. 과유불급,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봉 감독의 제안은 이렇다.
“미자는 옥자 때문에 울고불고하니 백숙과 생선도 먹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대다수가 동물을 사랑하면서 삼겹살도 먹는다. 육식하는 사람이 모두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대량생산에 동물을 편입시킨 공장식 축산이다. 지금 같은 축산업을 유지하면 소요되는 물과 사료, 메탄가스와 폐수로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수학적으로 지탱이 불가능하다. IMF 때 금 모으듯 전 인류가 합의해 육식을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감정을 떠나 간단한 산수이고 더이상 ‘유난 떠는’ 동물 애호가들만의 이슈가 아니다. 완전채식을 하건 1년에 한번 개를 먹건 그것은 개인이 알아서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고기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산술적으로만 봐도 환경 재앙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윤리적 선택의 단계가 있다.”
■ 역지사지해야 하거늘… 영화 <혹성탈출>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입장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인간의 편의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동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역지사지의 교훈을 주는 영화가 있다. 고전 에스에프(SF) 영화 <혹성탈출>(1968)이다. 먼 미래에 지능을 갖춘 유인원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 뒤 인간을 철창에 가두고 노예처럼 부린다는 내용이다.
영화 <혹성탈출>(1968)의 한 장면. 인간이 우리 속에 갇혀 있고 유인원은 밖에서 쳐다보고 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본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아무도 철창 안 구경거리 원숭이의 신세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철창 안 구경거리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화 <혹성탈출>(1968)의 한 장면. 인간이 우리 속에 갇혀 있고 유인원은 밖에서 쳐다보고 있다. 사진 네이버 영화
‘똑똑한 유인원’을 만들어낸 장본인 역시 인간이라는 설정도 주목할 만하다. <혹성탈출>(1968)은 여러 번 리메이크됐는데, 그중에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 <혹성탈출: 종의 전쟁>(8월15일 개봉)으로 이어지는 ‘프리퀄’ 3부작은 ‘유인원 사태’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과학자가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취해 인간의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약을 개발하고, 이 약의 전임상시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약효실험)에 유인원들이 이용된다. 그 과정에서 유인원들의 지능이 높아지고 주인공 ‘시저’를 중심으로 해방 전쟁에 나서게 된다.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제공
15일 개봉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극소수만 살아남은 인간들이 ‘시저’ 무리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은 유인원을 멸종시키고 ‘종의 정점’으로 계속 남아 있으려 혈안이 됐다.
현실이라고 영화와 그리 다를까. 영화를 보다 보면 구제역, AI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닭을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리는 ‘살풍경’이 절로 떠오른다.
■ 인과응보를 잊지 말아야… 영화 <컨테이젼>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주제는 영화 <컨테이젼>(2011)에서도 반복된다. 본격 전염병 예방 계몽영화로도 알려진 이 작품은 정체불명의 접촉성 전염병이 공항과 하늘길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인류가 혼돈에 빠지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촘촘하게 그려낸다.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제공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발병 경로를 드러낸다. 울창하던 숲에 크레인이 들어와 나무를 밀어버린다. 나무에 살던 박쥐는 갈 곳을 잃고 인근 돼지 축사로 들어간다. 박쥐가 떨어뜨린 먹이를 돼지가 먹게 되고 비좁은 우리 안에서 돼지들은 서로 병균을 옮긴다. 이 돼지 중 하나가 홍콩의 한 레스토랑에 팔려가는데 맨손으로 돼지를 만진 요리사가 손을 씻지 않고 손님과 악수를 하면서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가 시작된다.
누구를 탓할까. 무차별적인 벌목,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식 축산 등 모든 것이 인간이 저지른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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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이거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었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 보면, 슈퍼마켓에서 잘 포장된 돼지고기 말고 돼지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직접 본 적이 없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의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제공
황 감독은 2011년 구제역 사태 당시 돼지가 살처분되는 장면을 보고 ‘돈가스 마니아’였던 과거를 접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공장식 축산업체와 돼지를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키우는 강원도 산골의 자연농가를 찾아가게 된다.
사랑할까, 먹을까. 영화 내내 계속되는 질문이다. 황 감독은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가 완벽하지 않지 않나. 다들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공장형 축산에 대한 감독의 안타까움이 깊게 배어 있다.
“한국에는 1천만 마리의 돼지가 산다. 그중 99.9%는 '공장'에서 사육된다. 햇볕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전자조작 사료와 각종 약물을 투여받으며 생후 6개월 만에 110kg의 몸으로 부풀려져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어미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감금 틀(스톨)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새끼 낳는 '성적'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구제역은 소, 돼지 등 발굽 동물이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치사율이 5~55%에 이른다. 질병 자체가 전염성이 높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구제역이 더 큰 문제가 된 건 공장식 축산 때문이다.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마리의 가축을 밀집 사육하는 방식은 동물의 면역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바이러스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정부는 매번 살처분과 방역으로 일관하지만,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 한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나타날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동물의 생태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돼지는 스스로 배설 장소를 구분하는 동물이지만, 공장식 축산에서는 먹는 곳에서 싸고 자야 한다. 풀 먹는 소에게 곡물 사료가 주어지는데, 그것도 유전자조작 사료이다. 병 걸리면 매장하고, 똑같은 축사에서 또 사육하고, 병 걸리면 다시 파묻는 악순환. 게다가 살처분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과 보상 비용은 모두 국민의 혈세다. 살처분에 동원되는 공무원들은 과로로 쓰러지거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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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명이다’, 살림이야기 58호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의 한 장면. 사진 시네마달 제공
촬영 당시 여섯 살이던 황 감독의 아들 도영이는 강원도 자연농가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돼지를 만나고 이렇게 말한다.
“돼지가 나 사랑한대.” 이심전심의 순간이다.
■ 이란투석이더라도…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자연스러운 돼지의 삶, 돼지본색을 다뤘다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은 암탉본색에 대한 영화다.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가 원작으로 A4 용지보다 좁은 철제 우리에 갇혀 살던 암탉 ‘잎싹’이 양계장을 나와 생전 처음 알을 품어 청둥오리 ‘초록’을 부화시키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죽기 전까지는 나올 수 없는 양계장. 잎싹이는 며칠을 굶어 폐계 흉내를 내다 양계장 뒷산 폐계 웅덩이에 버려지면서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한 장면. 사진 영화사 제공
‘살충제 달걀’ 파동이 시작되고 좁은 철제 우리,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를 사용하는 공장식 축산과 밀집 사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를 직접 비판하기보다는 양계장을 나오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을 품어보는 잎싹이의 모성애를 보여주며 자연 상태에서는 20년 이상을 산다는 닭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향해 달음질한 잎싹이를 보고 누군가는 이란투석, 달걀로 돌을 친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에만 5천여만 마리의 산란닭이 사육되고 있다. 이 중 98%가 잎싹이가 도망쳐 나온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란투석이더라도 잎싹이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