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인 1924년 분실돼 그해 다시 만든 것으로 판명된 덕종 어보의 측면.
93년 전인 1924년 4월9일 경성(서울) 도심의 조선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경내 영녕전 신실에 각각 모셔졌던 덕종과 덕종비, 예종과 예종비의 어보(의례용 도장) 5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조선왕조가 망하고 왕실이 이왕가로 격하된 상황에서 관리 허술을 틈타 도둑이 든 것이다. 당시 관리자 근무일지인 <종묘일기> 4월9일치에 이렇게 적혀 있다. “적변(賊變)이 있었다…영녕전 8실과 9실의 금보가 없어졌다. 본과사무관 이원승에게 구두로 알렸다.”
종묘 봉안품이 털린 것은 전례 없는 불상사였다. <동아일보>는 그달 12일치에 ‘종묘전 내에 의외사변(意外事變)…’이라는 큰 제목을 달고 기사를 실었다. “종묘 전각의 자물쇠를 틀고 도적이 들었다…보고를 받은 장관 이하 책임자인 예식과장 이항구가 종묘에 이르러 살펴보니 덕종과 예종 신위 앞에 놓여 있던 보(어보)가 없어졌다. 이왕직 전하(순종)께서는 이왕직 책임 관리와 창덕궁 경찰서장을 시시로 부르시어 보를 찾았는지 염려하셨다.” 이항구는 매국노 이완용의 둘째아들. 당시 왕실 업무를 담당하던 기구인 이왕직 예식과장이었다.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관리를 소홀히 하다 사달을 낸 것이었다. 경찰은 도난범과 사라진 어보를 끝내 찾지 못했다. 그 뒤 5월2일치 <매일신보>에는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제작을 명해 어보를 새로 만들어 위안제를 지내고 종묘에 바쳤다”는 기사가 나온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의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 전시중인 덕종 어보는 이런 아픈 내력을 갖고 있다. 덕종(1438~1457)은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다. 세자가 됐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요절했다. 덕종 어보 원본은 그의 사후인 1471년 성종이 왕으로 존호를 올리면서 만들어졌다. 후대 다시 봉안한 어보도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유출돼 한 소장가 손에 들어갔다가 1962년 시애틀 미술관에 기증됐다. 이후 50여년간 보관됐다가 2015년 문화재청과 미술관 쪽의 합의로 다시 국내에 들어왔으니 참으로 곡절이 많은 유물이다.
문화재청은 환수 당시 덕종 어보를 조선 전기 진품이라고 발표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지난해 뒤늦게 일제강점기 도난 보도를 파악한 청 쪽이 뒤이어 어보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금 함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조선시대 어보와 달리 구리 함량이 가장 높은 사실을 밝혀냈다. 도난 뒤 다시 만든 어보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문화재청의 부실감정을 질타하고 나섰고, 일부 시민단체는 총독부와 친일파의 주도로 만든 ‘짝퉁’이라며 출품 철회 주장을 내놓았다. 최근 미국에서 환수해 함께 전시중인 문정왕후, 현종의 어보와는 격이 맞지 않는 모조품이니 빼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청은 고증 부실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유물 자체는 재제작품이며, 종묘에 정식 봉안됐던 유일한 덕종의 현존 어보여서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며 전시를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에서 전시중인 덕종 어보를 정면에서 본 모습.
과연 덕종 어보는 전시품에서 빼야 할 짝퉁에 불과한가.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종묘 신실에 봉안된 왕의 어보는 조선왕실의 정통성과 영속성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유물이므로 결원이 있으면 새로 만들어 봉안하는 것이 당연한 법도라는 것이다. 원로 역사학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어보는 종묘의 필수 비치 품목이다. 잃어버린 어보를 대신해 봉안한 재제작품이 맞다”고 했다.
“이왕직 관청의 가장 큰 업무는 종묘 제사입니다. 없어진 어보는 다시 봉안해 예를 갖춰야 하니까 상식적 판단을 한 거지요. 덕종 어보는 종묘 어보의 수난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했고, 해방 뒤 전쟁으로 문화재관리가 안 될 때 재제작품마저도 유출된 것이니 찾은 건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겁니다.”
덕종 어보 외에도 예종 어보 3과도 도난 뒤 다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고종과 순종, 순종비의 어보도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화재 등으로 망실돼 재제작한 어보만 28개나 된다. 문정왕후 어보도 화재로 1547년 만든 원본이 소실돼 1554년 다시 만든 것이다. 박물관 쪽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었다고 왕실 어보 공식 목록에서 빼야 한다면, 고종과 순종 등 다른 왕족들의 어보도 다 친일 유물로 빠져야 하지 않느냐.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1920년대 만든 어보를 포함해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669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난해 등재 신청했다. 청 쪽은 “조선왕조 시대에 한정된 유산이 아니라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져온 조선왕실 내력을 담은 기록물 성격이므로 등재 자격에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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