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101>로 데뷔한 보이그룹 워너원.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돌의 고용 안정성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낮다. 작년부터 소위 ‘프리데뷔’라고 하는 형태의 활동이 많아졌는데, 이는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채로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금만 실수해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간 보기’ 성향이 강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데뷔는 상업적 성과에 따라 멤버 구성이나 그룹의 성격까지도 바뀔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번 데뷔하고 나면 이미지도 굳어지고, 멤버 변동에 대한 팬들의 저항감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전례없는 히트를 기록한 보이그룹 워너원은 여러 기획사에서 선발된 연습생들의 연합체다. 이들은 정해진 활동 기간이 끝나면 해산해, 멤버들이 각자의 소속사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돌의 데뷔와 활동은 각 소속사의 사정에 크게 좌우된다. 워너원과 같은 ‘프로듀스 101’을 통해 데뷔한 걸그룹 아이오아이(I.O.I) 역시 해산 뒤 11명 중 2명이 아이돌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임시 연합체 형태의 아이돌은, 아이돌 지망생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기회인 동시에 아이돌의 직업 안정성을 전반적으로 크게 저해하는 시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돌의 절박함은 또한 상품이 된다. 워너원과 아이오아이가 비상한 관심을 얻은 비결이기도 하다. 팬들은 지금을 놓치면 좋아하는 스타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역시 절박해지는 것이다. ‘프로듀스 101’이 성공하자 아이돌 선발형 리얼리티 방송이 줄지어 기획됐다. 올가을에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도 이에 합류하며, 데뷔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들의 재기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이미 데뷔해서 삶을 베팅했으나 게임의 승리는 얻어내지 못한 이들에게서 최대한의 절박함을 이끌어내 전시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아이돌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아이돌을 직업인이 아닌 공공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티브이를 틀기만 하면 나와서, 시청자인 자신들에게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길 기대한다. 애교를 부리고, 웃음을 주고, 교복을 입은 채 물을 맞으면서도 예쁘게 웃고, 때론 대인원이 동원돼 체육대회를 함으로써 땀과 노력을 보여주길 말이다. 그럴 때 절박함이란 상품은 막강한 핑계가 된다. ‘너희들이 절박한 만큼, 고객인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생팬’이나 집단행동 등 팬덤이 괴물처럼 묘사되는 일에 익숙하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평범한 대중이야말로 괴물일지도 모른다.
분명 아이돌의 고용 안정 저하는, 기획사의 이익추구 과정에서 비롯됐다 볼 수 있다. 또한 아이돌 선발 예능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나 ‘육성회원’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불특정 다수인 대중이 아이돌에 대한 모종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아이돌은 노래와 춤을 통해 무대에 서는 퍼포머다.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는 것 이외에는, 어떤 간섭을 할 권리도 대중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은 공공기관이 아니고, 지역 주민은 편의점의 점주가 아니다. 편의점이 어떤 종류의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들 마찬가지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잠시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못했다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본사와 점주 사이에 발생한다. 동네 주민인 우리는 물건을 못 사거나 혹은 다른 가게에 가야 할 뿐, 어떻게 편의점이 휴점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아이돌로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