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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그의 연인은 누구와 누구였을까

등록 2017-09-01 19:42수정 2017-09-02 22:58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4)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1912년 작업실 앞의 클림트. 그는 특히 고양이를 좋아해 8~9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1912년 작업실 앞의 클림트. 그는 특히 고양이를 좋아해 8~9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어릴 땐 궁상맞은 짓을 잘했다. 필통을 만들겠다며 하드보드지를 사다가 작은 상자를 만들어 좋아하는 스타들의 사진을 붙이거나, 책갈피 따위를 만들겠다며 집에 있는 잡지에 실린 예쁜 사진들을 오려댔다. 난자당한 것은 사진이나 잡지뿐이 아니었다. 당시 나의 중2병 감수성을 가장 충족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미술 교과서였다. 가장 인기 있던 책갈피는 단연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였다.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금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클림트는 고도의 장식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에는 전통미술에 대항하는 미술가들의 단체인 ‘빈 분리파’의 주축이 되어 에곤 실레, 오스카어 코코슈카 등의 후배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의 직업 덕인지 그는 작품에 그만의 독특한 금빛 물감과 금박을 표현했다. 온통 황금빛이지만 다채로운 색을 표현한 <키스>에는 모두 8가지 방식의 금박이 사용됐다.

“옷 입고 있는 여자를 그리면서도 마치 나체와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화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인을 사랑했고, 여체를 탐닉했다. 작품뿐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 여성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 ‘빈의 카사노바’라고도 불렸다. 클림트의 작업실에는 늘 벌거벗은 모델들이 그의 곁에 머물렀다. 클림트도 화실에서는 속옷도 입지 않고 푸른색 작업복만 걸친 채 종일 그림을 그렸다. 평생 어머니, 두 여동생과 같이 살며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 최소 3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가 죽자 14명의 여인이 친자확인 소송을 내기도 했다.

클림트는 퇴폐적인 ‘섹스광’이었던 걸까? 예상 외로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노동자 화가’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루를 아령 체조로 시작해 화실에 처박혀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또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평생을 플라토닉한 관계로 유지한 연인도 있었다. 12살 연하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는 <키스>의 모델로 가장 가능성이 크게 거론되는 여성이다. 빈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 출신이었던 그녀는 양장점을 운영해 스스로 성공한 여성이었다. 글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클림트도 에밀리에게는 생전에 400여통의 엽서를 보냈으며, 1918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가 한 유일한 말도 “에밀리”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엄청나게 로맨틱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연인들이 있었다. 시기도 얼추 겹친다. <키스>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작품 <유디트> 시리즈의 모델이었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또한 클림트와 연인 관계였다. 빈의 은행가이자 대부호의 아내였던 아델레는 모두 네 번이나 클림트의 그림에 등장한다. 클림트의 두 아들을 낳은 미치 치머만도 그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인이다. 이런 클림트의 ‘자유연애’가 과연 그녀들에게도 가부장제가 가져온 구속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느끼게 해줬을지는 의문이다.

“클림트는 왜 에밀리 플뢰게랑 결혼하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 ‘책갈피’ 시절부터 덕질을 함께 하며 아직까지 비혼의 삶을 같이 지켜내고 있는 친구가 중얼거렸다. <키스> 속 남자는 어딘가 클림트를 닮아 있다. 여자도 에밀리를 몹시 닮았다. 그토록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키스를 퍼붓고 있으면서, 정작 현실의 연인은 ‘정신적’으로만 사랑했다니!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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