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복원된 뒤 수학여행 명소로 널리 알려진 천마총 전시관의 현재 모습. 40여년 만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이달 중순부터 내년 4월까지 문을 닫는다.
경주 천마총은 신라 옛 고분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국민고분’이다. 1973년 발굴 당시 저 유명한 천마도와 금관, 허리띠 등 1만5000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졌고, 고분 가운데 유일한 내부 전시관을 갖춰 답사와 수학여행의 명소가 됐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지은 천마총 전시관이 40여년 만에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다. 경주시는 이달 18일부터 내년 4월까지 전시관 문을 닫고 내부 보수와 전시 환경 개선 공사에 들어간다고 최근 밝혔다. 비가 새고 이슬이 맺히는 등 노후화가 심화됐다는 이유다. 그런데 학계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시관 핵심으로, 내부 진열장에 싸인 매장주체부(무덤 주인의 주검을 놓은 묘실)의 얼개와 그 위쪽을 덮은 돌무지(적석) 규모 등의 복원 방향을 놓고 다른 학설들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73년 천마총 발굴 당시 김정기 문화재관리국 연구실장(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단장을 맡은 조사단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금관총, 서봉총 등을 조사하면서 밝혀낸 신라 고분 특유의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 구조를 재확인했다. 문제는 묘실 위쪽을 덮은 강돌더미, 즉 돌무지의 모양새와 묘실을 둘러싼 나무곽(목곽)의 얼개였다. 발굴 이듬해인 1974년 펴낸 보고서는 묘실 위쪽 돌무지 형태가 초가지붕 모양(사다리꼴)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76년 전시관을 만들 때는 진열장에 복원한 묘실 위 돌무지를 길쭉한 반원형으로 만들어버렸다. 높이 2m의 묘실 목곽 위를 4m가 넘는 두툼하고 길쭉한 돌더미들이 짓누르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금관총 발굴보고서 등에서 도굴을 막기 위해 묘곽 위에 두툼한 돌더미를 덮었다고 적은 당시의 통설을 의식한 결과였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천마총 봉분 안에 있는 전시관 모습. 진열장 목곽 위에 쌓인 상부 돌무지(적석)의 모양을 최근 고분 발굴 성과에 따른 고증을 반영해 반원형에서 사다리꼴로 바꾸게 된다. 그러나 목곽과 돌무지의 높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각기 다른 설들이 엇갈려 지금도 첨예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시관이 다시 논란거리가 된 건 2015년 부근의 노서동 금관총이 재발굴되면서부터다. 재발굴 결과 금관총은 묘실 목곽 옆 사방으로만 두터운 돌층을 쌓았고 돌무지 봉분 모양도 윗부분이 평평한 사다리꼴 평면이었다. 조사 결과는 관을 놓은 목곽 위에 4m 이상 돌층을 쌓고 흙을 덮어 반원형 봉분을 만들었다는 일제강점기 이래 통설을 뒤엎는 것이었다. 당장 학계는 천마총 보수작업을 준비해온 시쪽에 묘실 얼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지난 2월 확정된 리모델링 안에서 묘실 위쪽의 돌무지 모양은 사다리꼴로 수정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하지만 또다른 쟁점인 돌무지·묘실 목곽의 얼개는 이견을 풀지 못했다. 기존 전시관의 묘실 목곽은 한겹의 단곽이다. 높이가 2m에 불과하고, 그 위에 4m 넘는 돌무지층이 깔린 기형적인 구조다. 실제로 이런 얼개라면, 목곽은 돌들의 무게에 눌려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과 김대환 국립박물관 학예사 등은 이런 물리적인 상식을 들어 묘실이 두겹의 목곽에 높이 4m 이상이며 그 위쪽 돌무지층은 높이가 2m 남짓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얼개여야만 목곽이 돌들의 하중을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발굴에 참여한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당시 실측기록을 토대로 묘실은 단곽이고, 곽 안에 돌들의 무게를 버티는 특수구조가 있었을 것이란 지론을 고수해왔다.
지난 연말 열린 경주시 자문위원 회의에서는 격론 끝에 최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리모델링안에서 기존 얼개대로 묘실 목곽은 단곽, 목곽·돌무지의 높이는 각각 2m, 4m를 유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대신 새 전시실에서는 묘실 목곽 얼개에 대한 다른 학설도 디지털 영상에 같이 소개하기로 했다. 첨예한 묘실 논란이 새 전시관에도 반영된 셈이다. 학계 한편에서는 논란을 풀기 위해 경주 일대 고분 중 하나를 새로 발굴해 얼개를 대조해보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