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오페라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1962년 돈 조반니를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오페라를 소개해 왔으며 장일남 작곡의 <왕자 호동>(1962년 초연) 등 다양한 한국 오페라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국립오페라단의 현재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그 시작은 이소영 8대 예술감독부터 시작한 수장 임명 파문 때문이었다. 정권과의 유대관계와 철학이 우선시된 인선은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켰고 친인척과의 부적절한 계약 등의 악재로 사퇴에 이르게 되었다. 제10대 한예진 예술감독에 이르러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는데 보수적인 문화계 인사들마저도 등을 돌리게 한 최악의 인선이었다. 경험 부족에 특별한 경력이 없는 인사를 세계적인 예술인이라고 호도하며 임명을 강행한 문화체육부에 조소와 원성이 자자했다. 여러 구설에 휩싸여 불안하기만 했던 11대 김학민 감독까지 예고 없이 임기 중에 사퇴하여 국립오페라단의 위상은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은 당연히 정부 쪽 책임이다. 인선의 방법을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임명을 할 수 있으니 당연히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낙점한다. 그 입맛이라는 것이 예술적인 공감대나 업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아무나 보내도 알아서 잘 굴러가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무신경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지난 정권에서만 벌어진다고 볼 수 없다.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예술감독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 정권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인사들이다. 어느 유력한 인사는 임명권자와의 친분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우연이라고 해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다. 정권과의 연계로 임명되는 문화단체장의 경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기획의 연속성과 안정성의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오페라 극장들은 새로운 프로그램과 서로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생을 시도하고 있다. 폴란드의 국립오페라단인 테아트르 비엘키는 2019년 작곡가 시마노프스키의 오페라 <로저 왕>을 스톡홀름 오페라 하우스, 도쿄오페라단과 공동 제작한다. 이런 협력 작업을 통해서 제작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음과 동시에 보다 좋은 연주자를 섭외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각 오페라단에서 역량이 출중한 스태프로 드림팀을 꾸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가 아닌 역량과 임기가 보장된 참신한 수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언제 자리에서 나갈지도 모르는, 능력도 없는 책임자와 일하고 싶어하는 해외 기관은 아무 데도 없다.
차라리 예술감독의 범주를 꼭 한국 사람으로 제한하지 말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이 어떨까. 차라리 그런 인사라면 정권과의 코드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국립오페라단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직원들을 안정시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고 전문적이며 누구나 인정받는 업적을 지닌 예술감독이 제대로 된 오페라를 만들게 하며 그 안에서 동량을 키우는 것이다. 문화의 격은 시간이 되면 저절로 올라가지 않는다. 헌신과 인내 그리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구비되어야 한다.
류재준/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