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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국 미술계에 번지는 ‘큐레이터십’의 위기

등록 2017-09-17 17:45수정 2017-09-18 17:39

[노형석 기자의 미술판]
제주의 역사자연유산을 콘텐츠로 활용한 1회 제주비엔날레의 알뜨르비행장 프로젝트 전시 풍경.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조형물 ‘파랑새’가 보인다. 제주 비엔날레 제공
제주의 역사자연유산을 콘텐츠로 활용한 1회 제주비엔날레의 알뜨르비행장 프로젝트 전시 풍경.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조형물 ‘파랑새’가 보인다. 제주 비엔날레 제공
전시틀을 짜고 작가와 담론을 발굴·부각시키는 큐레이터(기획자)는 20세기 후반 이래 ‘미술관의 꽃’으로 각광받아왔다. 그만큼 선망받는 직종이고, 작가군을 거느린 스타 큐레이터들은 미술판의 권력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국내 미술기획자들 사이에서는 ‘큐레이터십’(큐레이터 직종)의 위기가 뒷담화거리가 되고 있다. 양질의 기획전시는 별로 보이지 않고, 미술관장 같은 감투 자리 등을 둘러싼 암투와 갈등으로 잡음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2년 임기를 마치는 중견기획자 출신의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수하 학예실 큐레이터들이 ‘폭언’과 ‘고압적 태도’ 등을 문제삼아 지역 공무원노조에 진정서를 내자 최근 유임을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지난 8월27일 퇴임한 장석원 전 전북도립미술관장은 임기말 자신이 준비한 기획전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의 기획 방향을 놓고 학예실과 심한 마찰을 빚다가 퇴임 직후 학예실 큐레이터들에 의해 전시구성과 출품작 배치가 일방적으로 뒤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격앙된 그는 ‘학예실의 만행을 고발한다’는 입장문을 미술계에 돌렸다. 반면, 재력과 인맥을 업고 미술판 실세로 군림해온 재벌가 출신 기획자 김선정씨는 노골적인 권력의지를 드러내 입길에 올랐다. 올해 7월 광주비엔날레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최근 전시의 영역별 기획자들을 관리하는 총괄큐레이터, 사실상의 총감독 자리도 맡겠다고 밝혀 비엔날레 사유화, 권력독점 우려를 샀다. 486세대 기획자인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도 구설에 휩싸였다. 그가 원희룡 도지사의 지원 아래 주도한 1회 제주비엔날레는 섬의 역사자연유산에만 기대어 콘텐츠를 급조했다는 지적 속에 지역정치에 휘둘린 ‘관광홍보전’이란 비난을 받았다. 미술판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뒤 지역미술관에 관장, 학예사로 재직 중인 큐레이터들 상당수가 짐을 쌀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든다.

이처럼 지금 국내 미술판 주요 기획자들은 담론, 작가 발굴은 고사하고, 미술판 권력장 한구석을 얻으려 이합집산한다는 비아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술관 인사와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지자체에 비해 권한이 미약한 탓도 있지만, 직종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얕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작가들이 관장을 도맡았던 과거 후진적 관행은 상당 부분 바뀌었지만, 기획자 출신 관장들도 관 앞에서 자리 보전이나 진급을 위한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건실한 기획전시 모델을 개발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공미술관 소장 학예사들이 관료화의 타성에 젖어 큐레이팅 본령보다 관장 길들이기에 치중한다는 뒷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홍대 앞에서 만난 한 소장기획자는 “한국 현대 작가들은 서구 작가 못지않은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큐레이터들이 이를 뒷받침할 기획 역량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며 “국내 유력 큐레이터들은 시대와 미술을 고민하는 전시 생산자라기보다 자리와 권력을 얻기 위해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치고 받는 변방 정치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씁쓸해했다.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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