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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남도 땅끝 미황사 명물 천불도 왜 뜯었나…졸속수리 공방

등록 2017-10-10 16:44수정 2017-10-11 09:54

표구업자 나무칼로 벽화 뗐다가 ‘훼손’ 시비
청 내부 유례 드문 혼선…기술과는 ‘떼라’ 승인
유형과는 ‘부실수리’ 책임 규명 나서
학계도 ‘졸속수리’ ‘불가피’ 견해 엇갈려
미황사 대웅보전 동쪽 윗벽에 수리 전 붙어 있던 천불도의 일부. 나무부재와 흙벽에 부처를 그린 종이화폭을 그대로 붙인 첩부벽화다.
미황사 대웅보전 동쪽 윗벽에 수리 전 붙어 있던 천불도의 일부. 나무부재와 흙벽에 부처를 그린 종이화폭을 그대로 붙인 첩부벽화다.
산속 절집의 낡은 벽과 나무부재에 붙어 있던 국내 유일한 명품 불교벽화를 표구업자가 보존처리를 한다며 대나무칼로 조각조각 떼어냈다. 떼낸 벽화 편들은 종이에 배접해 별도 보관했지만, 벽화를 뗀 벽과 목부재에는 원화의 안료와 그림 흔적이 덕지덕지 남았다. 온전히 떼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재 보존학계 연구자들이 원형을 훼손한 졸속 수리라며 책임 규명과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벽화를 떼라고 승인해준 문화재청은 잡음이 일자 진상조사에 나섰다.

시비가 벌어진 곳은 전남 해남 달마산 기슭에 자리한 미황사다. 경내 대웅보전(보물 947호) 사방 윗벽에 붙은 천불도 벽화의 수리를 놓고 부실 공방이 달아오르고 있다. 미황사 천불도는 종이에 불상을 그려 벽에 붙인 첩부벽화다. 인간미 어린 표정과 미소를 지닌 부처 1천 분의 소박한 자태가 인상적인 조선 중기 불화의 걸작이다. 오래전부터 벽이 뒤틀리고 흙과 그림조각이 떨어져 절 쪽이 2015년부터 수리복원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5~10월 천불도를 수리하려고 전체 25폭 중 21쪽을 떼어냈는데, 사달이 난 것이다.

동쪽 윗벽의 벽화를 떼어낸 뒤 종이로 배접한 모습이다. 원래 벽에 밀착된 일부 불화도상들과 안료들을 온전히 떼내지 못해 곳곳에 허연 공백이 보인다.
동쪽 윗벽의 벽화를 떼어낸 뒤 종이로 배접한 모습이다. 원래 벽에 밀착된 일부 불화도상들과 안료들을 온전히 떼내지 못해 곳곳에 허연 공백이 보인다.
천불도 수리 공사는 2015년 10월 수리업체인 영산문화재연구소가 벽화를 떼어 별도 보존하는 설계안을 제출해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의 승인을 받아 진행해왔다. 벽이 뒤틀리고 너덜너덜해 계속 붙여둔 채로 수리할 수 없다는 설계 자문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대부분의 천불도 화폭을 떼어내 보관 중이다.

공방이 불거진 것은 올해 6월. 2억원 넘는 예산을 대는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쪽이, 수리기술과가 제출한 수리설계변경안을 심의하면서 ‘왜 벽화를 떼어낸 뒤 원형 복구하지 않느냐’고 지적하면서부터다. 황권순 유형문화재과장은 “벽화를 떼어낸 뒤 붙이지 않은 사실을 6월까지 몰랐다. 이후 2015년 설계승인 당시부터 수리안에 잘못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벽화는 보물인 대웅전의 일부로, 분리될 경우 진정성이 훼손된다. 따라서 원형 보존이 원칙인데 왜 처음부터 떼어내는 쪽으로 추진한 것인지, 왜 아직도 원래 자리에 붙이지 않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유형문화재과 쪽은 한경순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장(건국대 교수) 등 자문위원 4명과 현장을 조사해 표구장인이 물을 뿌린 뒤 대나무칼로 벽화를 떼냈고, 벽체와 나무부재에 안료와 형상이 남은 사실도 확인했다.

유형문화재과 쪽 자문위원들은 이후 낸 의견서에서 벽화를 떼낸 수리 과정이 심각한 원형 훼손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그림, 안료 등에 정통한 전문가가 협업했어야 하는데 전문성 떨어지는 표구업자가 무리하게 대칼로 작업해 사실상 그림을 훼손했다”며 “수리 과정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형문화재과 쪽은 실제로 업체의 수리 공정 전반을 조사해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고발할 방침이다.

2015년 수리 승인 당시 벽화를 뗄 것을 주문한 수리기술과 쪽 설계자문위원들은 “벽체가 뒤틀리고 벽화 지질도 열악해 떼지 않고서는 수리가 불가능했다”고 반박했다. 업체의 자체 자문위원과 수리기술과 설계자문위원에 모두 참여한 김용한 전 문화재청 보존과학센터장은 “벽화나 벽체 등의 열화가 매우 심해 떼는 게 불가피했고, 다시 붙이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벽화를 뗀 표구장인도 보존처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업체 쪽도 “청 설계자문위와 지난해부터 올해 초 열린 기술자문위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나무칼로 천불도 벽화를 떼낸 뒤 찍은 대웅보전 서쪽 윗벽의 모습. 떼내지 못하고 벽에 남은 부처의 형상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런 흔적들을 남긴 게 부실수리의 증거라고 문화재 보존학계의 일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대나무칼로 천불도 벽화를 떼낸 뒤 찍은 대웅보전 서쪽 윗벽의 모습. 떼내지 못하고 벽에 남은 부처의 형상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런 흔적들을 남긴 게 부실수리의 증거라고 문화재 보존학계의 일부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공방이 심화되자 수리기술과 쪽은 감독 주체인 해남군에 9월 초 공문을 보내 수리 부실을 지적해온 전문가들과 벽화 떼낸 것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을 조만간 같이 불러 문제를 진단하는 회의를 소집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5~8월 벽화를 대부분 떼어낸 지 1년이 훨씬 지난 상황에서 책임 규명과 불화의 원상 복원 여부를 뒤늦게 논의하게 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한 전문가는 “떼어낸 천불도가 다른 종이에 배접된 만큼 원래대로 부착하려면 다시 조각조각 떼어내 붙여야 하는 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번 공방은 국내 문화재 복원의 초라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영산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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