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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원터에서 왜 고려시대 절집 보물들이 줄줄이 나오나?

등록 2017-10-28 10:41수정 2017-10-28 17:02

도봉서원 터에서 ‘영국사 혜거국사비’ 조각 출토
명문보니 서원터에 앞서 들어선 영국사 승려로 확인
구청 추진해온 서원복원안 더욱 난항 겪을 듯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영국사 혜거선사비의 조각. 서원터에 앞서 지어진 영국사의 내력과 혜거선사의 인적 사항,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영국사 혜거선사비의 조각. 서원터에 앞서 지어진 영국사의 내력과 혜거선사의 인적 사항,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 도봉산 자락에는 유서깊은 조선시대 서원터가 하나 남아있다. 조선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조광조, 송시열을 제사지냈던 도봉서원터(서울시기념물)의 자취다. 1573년 조광조(1482∼1519)를 기리려고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1608년 중건된 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던 기구한 내력의 유적이다. 그런데 수년전 이 서원터에 앞서 고려시대 번성한 큰 절 영국사가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면서 유적은 문화재계의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2012년 서원터에서 금강령, 금강저, 향로 등 고려 때의 보물급 불교공예품들이 청동솥 안에 담긴 채 쏟아져나왔고, 서원의 핵심 건물터도 사찰의 금당 추정터 위에 지어진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 도봉서원터에서 최근 예사롭지 않은 고려시대 불교 유물이 또다시 나왔다. 고려시대인 10세기께 영국사에서 불도를 닦은 큰 스님 혜거국사(慧炬國師)의 비석 조각이 출토돼 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와 도봉구청은 올해 6월부터 서원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최근 길이 폭 52㎝, 두께 20㎝ 크기의 ‘영국사 혜거국사비’ 조각을 찾아냈다고 27일 발표했다. 혜거국사비는 조선 14대 임금 선조의 손자인 이우(1637∼1693)가 현종 9년(1668)에 신라시대 이후의 금석문 탁본을 모아 엮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88자만 남은 비석 조각의 탁본이 실려 전해왔으나 실물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날 연구소쪽이 공개한 사진과 자료를 보면, 발굴된 비석 조각은 화강암 재질로 281자가 새겨져 있다. 판독된 글자는 256자로 ‘견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라는 명문이 확인된다. 견주는 경기도 양주의 옛 지명이다. 도봉산 일대가 고려 조선시대 양주땅이었으므로 영국사는 도봉서원터에 앞서 들어섰던 사찰임이 비석조각 발굴로 명확하게 확인된 것이다. 혜거국사비의 탁본을 실은 <대동금석서>에는 편집자 이유가 ‘영국사 혜거국사비’라고 직접 적은 명칭만 있고, 정작 탁본에는 절이름 없이 혜거국사란 이름만 나온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탁본의 영국사가 도봉산 자락의 영국사인지, 충북 영동 영국사인지를 놓고 그동안 견해가 엇갈려왔는데, 이번 발굴로 해묵은 의문이 풀리게 됐다.

비석의 주인공 혜거국사는 10세기 중국 오월 지역으로 유학가서 고승 법안문익 아래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선종의 일파인 법안종을 고려에 전파한 인물이다. 법안종은 고려 4대 임금 광종(재위 949~975년)이 불교를 개혁하고 선교 양종(兩宗)을 통합하고자 들여온 종파로 혜거국사가 처음 전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스승인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은 법안종을 창시한 고승이다. 송나라 때 펴낸 역대 고승들의 연대기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국왕이 유학 중인 혜거 스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사(王師)의 예로 맞았다는 기록과 함께 그가 위봉루에서 설법한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대동금석서>에는 이런 내력을 지닌 ‘영국사’의 혜거국사비 탁본과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 있던 ‘갈양사’의 혜거국사비 탁본이 별도로 실려있다. 갈양사 혜거국사비 탁본에는 혜거 국사가 고려 최초의 국사(나라를 이끄는 큰 스님에게 붙였던 존칭)였다고 나온다. 학계에서는 불도를 닦은 절이 각기 다르게 나오는 두 혜거국사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놓고도 혼선이 있었는데, 비문조각의 기록을 통해 서로 다른 인물임이 밝혀지게 됐다. 비문 내용중에 “국사의 휘(諱:죽은 이의 생전 이름)는 혜거, 속성은 노씨고 동자성의 사람으로, 스승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도봉산의 신정선사를 찾아갔다”는 구절이 보이는데, 탁본 명문에 나오는 갈양사 혜거국사는 성이 다른 박씨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려시대 건물터 아래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건물 기단도 드러나 영국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 때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도 일부 확보됐다. 학계는 유적에서 비석 조각이 추가로 더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영국사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중건 기록이 전할 정도로 조선초까지 건재했으나 이후 유림들에 의해 절집이 허물어지고 서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발굴조사 때는 세종의 형 효령대군이 중창 당시 대시주를 한 내력이 적힌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세종 재위 당시 왕실사찰이던 서울 은평구 진관사의 수륙재를 영국사에서 거행하는 것이 논의됐으며, 세조도 축수재를 치를 정도로 절의 사세가 컸다고 전해진다.

2011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서원터의 정비 복원 계획을 추진해온 도봉구청 쪽은 이번 발굴로 더욱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70년대 터에 도봉서원을 재건해 제례를 해온 유림 재단 쪽은 빠른 복원을 원하고 있으나, 파면 팔수록 고려시대 사찰 유적과 유물들이 쏟아지자 조계종 쪽에서는 장기적인 추가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모를 파악하기 전에는 섣부른 복원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 된 셈이다. 앞서 2014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출토된 고려시대 사찰 유물들을 근거로 구청 쪽의 서원 복원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조선의 서원터와 고려 사찰터가 켜켜이 중첩된 유적의 장래 복원을 놓고, 어떻게 ‘유불상생’의 묘안을 찾을지 주목된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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