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홍릉의 콘텐츠 시연장에서 열린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행사에서 비보이의 동작을 세밀한 데이터로 만들어 인공지능(AI)이 안무를 짠 작품 ‘비보이 X 에이아이’가 선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고등학생 희수는 엑소의 찬열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찬열은 오늘도 또 학교에 지각한 희수를 위로해주고, 신곡이 나왔다며 직접 링크를 걸어준다. 일방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아이돌과 팬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가상이다. 하지만 곧 실제 다가올 일이기도 하다.
“몸짓은 미련이 되고 춤을 추는 사람/ 미련은 밤도 없이 한숨을 몰아쉬어요” 인공지능(AI)이 이렇게 가사를 쓰면, 사람은 “몸짓엔 미련도 없이 정오의 드라이한 춤을 추는 사람/ 미련은 낮도 없고 숨을 몰아쉬어요”로 바꿔 노래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만나 협업한 결과물이다. 곡을 만들 때의 느낌을 몇 가지 키워드로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가사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11월1일 서울 홍릉의 콘텐츠 시연장에서 융합형 콘텐츠 협업 프로젝트인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시연회가 열렸다. ‘1과 0 사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를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는 지난 8월말부터 10주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진행한 6개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11011101. 일부러 시연회 시간을 11월1일 11시1분으로 정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1과 0은 이진법으로 모든 작업을 처리하는 컴퓨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1을 인간으로 0을 인공지능으로 상정한 의미라고도 한다. 진행을 맡은 윤상의 말처럼 “인간과 기술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음악에서 찾아보려 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핵심인 ‘음악’에서도 인공지능과 인간의 긴밀한 협업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나는 소리를 분석해 현재 상황을 파악해 앰비언트(음색과 분위기, 공간감을 강조하는 전자음악의 한 종류) 음악으로 표현하는 ‘에트모: 공간생성음악’, 아티스트와 인공지능이 서로 샘플을 주고받으며 곡을 완성하는 ‘몽상지능’, 인공지능이 만든 선율에 아티스트가 리듬과 신시사이저를 입히는 ‘플레이 위드 에러’ 시연이 펼쳐졌다.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걸 넘어 비보이의 동작과 각 관절의 각도를 데이터로 만들어 인공지능이 안무를 짠 ‘비보이 X 에이아이’(BBOY X AI), 인공지능 일상대화 기술을 이용해 아이돌 그룹 멤버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셀렙봇’(Celeb Bot), 주어진 음악에 인공지능이 비주얼 효과를 입히는 ‘AI: 당신의 순간에 감성을 입히다’ 등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다.
이 모든 작업은 결국 인간이 입력한 정보와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작업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이번 프로젝트의 멘토링을 맡은 장재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센터장은 이런 답을 내놨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던 한 중국 기사가 ‘아름다운 수다. 사람이 둘 수 없는 수’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대부분의 예술가들도 그런 점을 보기 원할 텐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창작세계를 위한 발판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김학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