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리 30호분에서 나온 철제 말갖춤과 칼 등의 출토품들. 맨 오른쪽의 말 재갈은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나 경남 합천 옥전 고분, 부산 복천동 고분 등에서 나온 가야계 말 재갈과 거의 모양새가 같다. 그래서 발굴단은 무덤 주인공을 가야계 지배자일 것으로 보고있다.
최근 학계와 지자체 등에서 가야사 재조명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옛 가야권의 서북 변경 산악지역인 전북 장수의 옛 무덤에서 6세기 전반께 가야계 지배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말갖춤과 토기들이 쏟아져나와 눈길을 끈다. 말갖춤은 고대 귀족, 군인들이 말을 타는 데 썼던 도구와 장식물을 이르는 것으로 ‘마구’라고도 한다.
장수군과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장수군 동촌리 산 26-1 일대에 있는 동촌리 고분군의 30호분을 최근 발굴조사한 결과 재갈, 발걸이 따위의 철제 말갖춤과 토기류들이 다수 출토됐다고 8일 발표했다. 가장 중요한 출토품으로 꼽히는 말갖춤은 무덤 주인의 주검을 넣었던 으뜸덧널(주곽)에서 나왔다. 재갈, 발걸이(등자), 말띠꾸미개, 말띠고리(교구) 등 다양한 딸림유물들이 확인된다.
고분 부곽에서 나온 항아리, 굽다리 접시 등의 토기류. 전형적인 백제 양식과 가야 양식들이 뒤섞인 모습들이다. 장수 지역 일대에서 백제, 가야 사이에 활발한 문화교류가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모으는 건 재갈이다. 이 재갈은 경북 고령 지산동 44호분, 경남 합천 옥전 엠(M)3호분, 경남 함안 도항리 22호분, 부산 동래 복천동 23호분 등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가야 수장층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류와 거의 모양새가 같다. 무덤 주인공이 가야계 수장층임을 짐작하게 한다. 함께 나온 목긴항아리(장경호), 목짧은 항아리(단경호), 그릇받침(기대), 그릇뚜껑 같은 토기류는 출토 양상이 흥미롭다. 겉모양새와 문양 등에서 백제, 소가야, 대가야의 전형적인 양식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이 고분을 쌓은 옛 사람들이 장수군 진안고원 일대에 살면서 충청권의 백제, 영남권의 가야소국들과 교류해온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동촌리 30호분은 남북 길이 17m, 동서 길이 20m, 잔존 높이 2.5m의 타원모양 무덤이다. 내부에는 무덤주인과 말갖춤을 묻은 으뜸덧널 1기와 껴묻거리(부장품)를 넣은 딸린덧널(부곽) 2기가 있다. 으뜸덧널의 경우 표면을 고른 뒤 약 1m 높이로 흙을 쌓고 되파기해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장수 동촌리 고분군은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에 자리한 가야계 고총고분군(봉분 높이가 높은 고분군)이다. 모두 80여기의 무덤들이 있는데, 지름 20~30m의 중대형 무덤들이 많다. 지금까지 모두 3기가 발굴됐으며, 2015년 조사 당시엔 징이 박힌 말편자가 출토되기도 했다.
전북 장수 동촌리 고분을 공중에서 내려다본 모습.
고분 발굴현장 세부 모습. 가운데 무덤주인 주검과 말갖춤을 넣은 으뜸덧널(주곽) 구덩이가 보인다. 양옆에는 있는 구덩이는 부장품을 넣은 딸림덧널(부곽)이다.
장수군 진안고원 일대에는 동촌리 고분군 외에도 100기가 넘는 고분들과 신호불을 올리던 봉수대터, 철을 만들던 제련유적 등이 흩어져 있다. 고고학계는 대체로 이 유적들을 가야계통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대규모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은 없다. 일부 연구자들은 진안고원 일대에 백두대간 동쪽의 가야연맹체와는 또다른 소국 ‘장수가야’가 존속했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9일 낮 1시 현장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발굴조사 설명회를 연다. (063)247-8230.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제공